이현주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를 수습하기 위해 출범시키는 혁신위원회가 구성부터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김한길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의 역할론이 부상하고 있다.
당 지도부가 혁신위를 이끌 중량감을 갖춘 적임자를 낙점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벌써부터 혁신안에 대한 당 안팎의 기대감이 크지 않으면서다. 일각에선 김기현 2기 지도부의 혁신위가 제 역할을 못 할 경우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 김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18일 오전 비공개 회의를 열고 혁신위 구성 등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윤희석 국민의힘 선임대변인은 이날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일단 위원장 인선부터 논의를 했고,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어느 분이 유력하다 이런 말씀을 드릴 단계는 아니다"라면서 "주말까지 인선을 완료해서 월요일(23일) 출범을 목표로 작업을 더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이날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으로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거론됐지만, 정 이사장은 부인했다. 그는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당으로부터 연락받은 적이 없다”면서 “(저는)정치적 능력,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다. 동반성장연구소 업무로 바쁘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혁신위에 대한 기대감이 낮다. 이준석 전 대표 시절 구성된 '최재형 혁신위'가 만든 혁신안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데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도 내홍을 부채질하는 등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탓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강서구청장 선거 후유증 극복의 의미는 있어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선 김한길 역할론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통합위 위원과 국민의힘 지도부 만찬 자리에서 김 위원장을 극찬한 것으로 알려진다. 윤 대통령은 통합위가 제안한 정책들을 실현하기 위해 예산, 입법 등 지원해달라고 여당에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통합위가 제작한 정책 제안 보고서 100부를 당에도 배포해 적극적으로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현장에 있었던 여권 관계자는 “정말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대통령이 위원장을 칭찬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김 위원장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이 예전부터 두터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략통'인 김한길 위원장은 과거 여러 차례 정계 개편의 중심축에 섰던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김 위원장과 손잡으면서는 당 위기 때마다 '윤석열 신당' 창당설이 흘러나왔다. 일각에선 내년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혁신위가 제 역할을 못 할 경우 비대위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 경우 김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다음(비대위원장)은 김한길 위원장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김 위원장은 통합위 활동을 통해 중도·약자를 포용하는 정책을 발굴한데다 내년 총선에서 중도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여권에서 기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으로 첫 배지를 달았다. 4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 위원장은 정당 대표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및 문화관광부 장관 등 당·정·청에서 국정의 주요 분야를 경험했다. 특히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현 국민의힘 의원과 탈당해 국민의당을 만들면서 제3지대 돌풍을 일으킨 경험도 있다. 당시 국민의당은 호남 의석을 석권하고, 전국 비례대표 득표율 2위를 득표하며 원내 제3당으로 진입했다.
민주당은 김 위원장을 겨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윤 대통령은 어젯밤 김기현 대표와 김한길 위원장 등 정부 인사들을 불러 '어떤 어려움도 함께하겠다는 각오를 다지자'고 말했다"면서 "전국 방방곡곡은 윤 대통령의 무능한 국정운영으로 아우성인데 자신들만의 만찬을 열어 '윤심'으로 대동단결을 외쳤다니 기가 막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전날 한 말을 끄집어내 "'(윤 대통령을)가장 지치지 않고 일하는 분'이라며 치켜세우고만 있으니, 어느 국민이 공감하겠느냐"며 "민심 잃은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심기 보좌가 아니라 직언"이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