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반도체 '투자 타이밍' 놓쳐선 안된다

조인경 산업부문 콘텐츠매니저

일본 정부가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기존 반도체 관련 기금을 증액하는 등 올해에만 추가로 3조4000억엔(약 31조원)의 예산을 투입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차세대 반도체의 자국산화를 목표로 하는 국책회사 라피더스에 6000억엔, 일본에 두 번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는 대만 TSMC에 9000억엔, 소니를 포함한 기존 반도체 기업에 7000억엔 이상의 보조금을 줄 필요가 있다는 구체적인 지원 규모도 거론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최근 2년간 반도체산업을 지원하겠다며 확보한 예산 2조엔(약 18조원)보다도 훨씬 더 많은 액수를 추가 투자하는 셈이다.

부동산 규제도 과감히 풀었다. TSMC 등이 일본 내 공장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정부가 직접 나서 50년 이상 묶여있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해제하고 전국 농지·임야 부지에 반도체 등 첨단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30여년 전 반도체 강국이었으나 그간 쇠퇴의 길을 걸어온 일본이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 격화를 틈타 다시 반도체산업 부활을 위해 얼마나 절치부심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만이 아니다. 반도체산업이 글로벌 경제안보 경쟁의 전쟁터가 되면서 세계 각국은 반도체 공급망 균열에 대응하고 자국 반도체 기술 역량과 제조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늘리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시행한 '칩과 과학법(반도체법)'을 통해 5년간 반도체산업에 총 527억달러(70조원)를 지원하고, 이 가운데 반도체 제조시설에 390억달러(약 52조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도 지난 7월 반도체법을 승인하며 2030년까지 공공·민간 투자에 총 430억유로(62조원)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중국 역시 자체적으로 모든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2025년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1조위안(약 181조원) 이상을 쏟아붓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부랴부랴 지난 7월 반도체 2곳을 포함해 7곳의 첨단산업 특화단지를 선정하며 반도체 초격차 경쟁력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설비투자 세액공제율도 최대 25%까지 높였다. 그러나 내년도 예산안에 경기 용인·평택과 경북 구미 반도체 특화단지의 인프라 조성 비용이 한 푼도 반영되지 않은 사실이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양향자 의원실에 의해 공개됐다. 삼성전자가 300조원을 투입할 예정인 세계 최대 규모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첫 삽을 뜨기도 전부터 전력 공급 계획을 재생에너지로 다시 수립하라는 야권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선 다른 국가들에 비해 부족한 예산과 정책적 지원마저도 제때 뒷받침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엇보다 반도체산업은 '타이밍'이다. 생산능력 확보가 곧 경쟁력이고, 설비투자 속도가 성패를 좌우한다. 기술 경쟁에서 한 번 뒤처지면 이를 다시 따라잡기까지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부문과 SK하이닉스가 전분기보다 적자 폭을 줄일 것으로 보이는 등 반도체 업황 회복이 기대되는 지금, 투자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산업IT부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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