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잇수다]아직도 닦지 못한 '검정고무신'의 눈물

시정명령에도 불공정 계약 자체 무효 안돼
혐의 권고에 출판사 무대응 일관

“창작 이외에는 바보스러울 만치 어리석은 창작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검정고무신’은 제 인생 전부이자 생명입니다.”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 한 장면. [영상 = KBS]

단행본과 애니메이션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만화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는 지난 3월 사망하기 이틀 전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이같이 말했다. 작품은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작가가 15년 동안 받은 저작권료는 1200만원이 전부였다. 원작자였지만 오히려 불공정 계약으로 저작권 침해 고소를 당해 힘겨운 법적 싸움을 이어가던 작가는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작가의 죽음으로 창작자의 권리보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확대되자 ‘검정고무신’ 사건에 대한 특별조사를 진행하고 지난 7월 ‘예술인 권리보장법’을 근거로 형설출판사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아울러 한국저작권위원회를 통해 형설출판사 대표의 검정고무신 캐릭터 공동 저작권자 등록을 말소했다. 대중은 그렇게 기영이와 기철이가 늦게나마 원작자의 품으로 돌아간 것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10일 문체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선 이우영 작가 부인 이지현 씨는 문체부의 시정명령 이후에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정명령을 받은) 형설앤은 반응하지 않았고, 소통도 연락도 없었다. 시정명령을 어겨도 부과되는 과태료가 너무 적어서 (형설앤이) 소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고 이우영 작가 부인 이지현 씨가 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문체부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3년 이내의 범위에서 재정 지원을 중단·배제할 수 있다. 문제는 시정명령을 통해 작가가 맺은 불공정 계약 자체가 무효가 돼야 하는데, 시정명령서는 계약자와의 협의를 권고한다는 점이다. 이 씨는 “저는 그들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이미 시정명령을 이행할 기간도 지났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2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불공정 계약이나 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응답자 절반 이상인 58.9%가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 관련 불공정 행위로는 제작사 및 플랫폼에 유리한 일방적 계약(40.8%), 계약 체결 전 계약사항 수정요청 거부(32.1%) 등이 있었으며, 일방적 계약의 주요 내용은 2차적 저작권, 해외 판권 등 제작사 및 플랫폼에 유리한 일방적 계약으로 조사됐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문체부가 존속하는 이유 중 창작자 권리 보호가 가장 중요한데, 시정명령으로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면 좀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형설앤 측이 2019년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박광철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간사는 “저작권위가 창작가만 저작자로 인정한 것은 의미 있는 결정이나, 현재 진행 중인 손배소에서 이 작가 쪽이 지면 유가족은 수억 원의 돈을 물어내고 거리로 나앉을 판”이라며 아직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법과 제도개선도 시급하지만, 무엇보다 창작에 집중하느라 계약에 어두운 작가를 돕는 전문가 중심의 시스템과 세부 내역과 조건을 공개하는 계약 문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편집자주예잇수다(藝It수다)는 예술에 대한 수다의 줄임말로 음악·미술·공연 등 예술 전반의 이슈와 트렌드를 주제로 한 칼럼입니다.

문화스포츠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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