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기자
싱가포르가 지난해 일본에서 30억달러(약 4조95억원) 규모 부동산 쇼핑에 나섰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종료 이후 관광수요가 늘어난 데 이어 엔화 가치도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물류센터와 호텔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블룸버그는 24일(현지시간) 영국의 부동산 정보업체 나이트프랭크가 이달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해 올해 싱가포르에서 일본 부동산 시장으로 30억달러가 유입됐다고 전했다. 이는 해외에서 일본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된 전체 자금 중 가장 크다. 싱가포르 다음으로는 미국, 캐나다, 아랍에미리트 등이 순위에 올랐다.
특히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은 일본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GIC는 지난 4월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으로부터 일본 내 물류창고 6곳을 8억달러에 매입했다. 전체 싱가포르 투자 액수의 26%를 차지하는 규모다.
GIC는 6900억달러를 굴리는 세계 최대의 국부펀드다. 1990년대부터 일본 부동산을 적극적으로 매입해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GIC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일본 관련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GIC는 팬데믹 이후 소비 증진에 따른 물류 수요 확대를 예상하고 물류 허브 구축을 위해 각종 창고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같은 이유로 관광 수요가 커지자 호텔도 적극 매입하고 있다.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입국자 수는 215만6000명으로, 코로나19 발발 전인 2019년 동월 대비 85.6% 수준까지 회복했다. 호텔은 물가 상승세를 즉각 반영해 객실 요금을 실시간으로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임대료를 빠르게 올리기 어려운 상업용 부동산과 아파트 건물보다 투자 매력도가 높다. 엔화 가치 하락도 일본 부동산 시장 유입 요인이 되고 있다. 달러당 엔화 환율이 148엔대를 돌파하면서 차입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반면 보유하고 있는 상업용 부동산은 수익률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매각 검토에 나섰다. 블룸버그는 지난 5일 GIC가 도쿄 비즈니스 지구에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자사 소유 건물의 공실률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해 도쿄 시오도메 소재의 덴츠 본사 빌딩 매각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시장이 추정하는 덴츠 본사 빌딩의 시가는 최소 20억달러로, 매각이 성사되면 일본에서 가장 고가의 상업용 부동산 거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 외의 글로벌 투자자들도 앞다퉈 일본 호텔 매입에 뛰어들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와 미국 최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블랙스톤은 올해 호텔 거래에 20억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 투자 액수인 14억달러를 뛰어넘는 금액이다.
블룸버그는 "싱가포르는 엔화 약세와 관광객 증가로 인한 숙박 수요 증가에 힘입어 올해 일본 부동산 부문의 최대 투자자가 됐다"며 "인플레이션 환경 속에서 호텔 건물은 사무실 아파트보다 더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