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제일기자
개인택시를 탔던 말기 암환자가 택시기사의 실수로 교통사고가 발생해 제때 항암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면, 택시기사가 사망자와 유가족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18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전주지법 고연금 부장판사는 A씨가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연합회는 A씨에게 175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A씨의 남편인 B씨는 2020년 10월 방광암 말기 진단을 받은 이후 수도권 소재 한 대학병원에서 2차례 항암수술을 받았다. 무사히 수술을 마친 후 B씨는 부인 A씨와 함께 본가가 있는 전북 전주시의 대학병원으로 옮겨 항암치료를 이어가고자 했다.
그해 12월 옮긴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택시로 귀가하던 B씨는 택시기사의 부주의로 도로 연석을 들이받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B씨는 12주간 치료를 요하는 흉추골절상을 입었다. 이 부상으로 B씨는 예약된 대학병원 항암치료를 제때 받지 못했고, 결국 사고 50여일 만인 2021년 2월초 사망했다.
이에 부인이자 유일한 상속인인 A씨는 사고택시가 보험 가입한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배상을 요구했다. 배상액으로 제시된 금액은 400만원이었다.
피해배상 금액으로는 터무니없이 적다고 판단한 A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은 B씨의 사인이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은 아니지만 교통사고로 항암치료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라며 위자료 등 2600여만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소송 피고측인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B씨는 교통사고가 아닌 방광암 때문에 사망한 것이다"라며 "경미한 충돌사고에 불과한 이 사고로 흉추골절상을 입었다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원고인 A씨의 청구를 전부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으나 연합회가 제기한 항소심에서는 재판부의 강제조정으로 A씨에게 175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A씨와 연합회 모두 이에 이의제기 하지 않았고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A씨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공단 나영현 공익법무관은 "교통사고가 사망의 직접 원인은 아닐지라도 이로 인해 암치료의 시기를 놓치게 되었다면, 위자료 산정시 이런 사정이 적극 반영되어야 함을 시사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