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훈기자
금융권의 대출금리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금융권의 지난 7월 가계대출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5조원 넘게 늘어 올해 들어 월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가계대출 증가세가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를 옥죌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도 관계기관 회의를 열어 가계대출 증가세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9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7월 전(全)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전월 대비 5조4000억원 증가했다.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지난 4월 2000억원 순증 한 이래 5월(2조8000억원), 6월(3조5000억원)에 이어 증가 폭을 키우고 있다.
가계대출 확대의 주원인은 꿈틀대는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있다. 대출 항목별로 구분해 보면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5조6000억원으로 전체 대출 증가 폭을 주도했다. 이런 증가 폭은 전월(6조4000억원)에 이어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은행권의 전세대출과 집단대출은 각기 1000억~2000억원씩 감소했으나 일반 개별주택담보대출(3조9000억원), 정책모기지(2조4000억원)의 증가하면서 전체 주택담보대출도 늘었다. 금융위는 "주택거래량 회복 등으로 4월 이후 가계대출이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이차전지주 등을 중심으로 주식시장이 다시 부상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줬다. 전 금융권의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은 전월 대비 2000억원 감소해 연중(8000억~7조5000억원)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공모주 청약 등 일시적 자금 수요, 반기 부실채권 상각 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보험사, 여신전문금융사의 기타대출 감소 폭이 축소된 데 따른 결과라는 게 당국 설명이다.
반면 아직 금융권의 대출금리는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이날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의 주요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 금리(신규 코픽스 기준)는 4.33~6.00%에 달했다. 연초 수준은 아니나 3%대 금리 상품은 자취를 감췄다. 이자 부담도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잔액 기준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지난 6월 4.21%로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업계선 금리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도 대출 증가 폭이 날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연초부터 특례보금자리론 출시, 종합부동산세 완화, 역전세 반환 대출 규제 완화 등 완화적인 정책을 시행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와 함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중심으로도 이른바 '금리정점론'이 힘을 얻으면서 부동산·주식 등 자산시장에 훈풍이 부는 추세다.
그러나 추가 금리 상승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최근엔 Fed가 현재의 높은 금리 수준을 상당 기간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지속되면서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4%대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 영향으로 지난 8일 기준 은행채 AAA등급 5년물 금리는 4.223%를 기록했다. 지난 4일(4.354%) 대비론 소폭 내렸지만, 6월 초순(4.094%) 대비론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이런 은행채 금리 상승은 추가 금리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시스템 위기로의 전이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가계부채가 장차 우리 경제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초부터 진행된 완화적인 정책이 결과적으로 부동산 부문의 부채를 늘리고 있는 국면"이라며 "미국도 금리를 더 올리지는 않더라도 현 수준의 금리(5.25~5.50%)를 한동안 유지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른 가계부채 리스크는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성장률을 짓누르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도 가계대출 증가세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이세훈 사무처장 주재로 오는 10일 가계부채 관련 관계기관 점검 회의를 열어 최근의 가계대출 확대 추세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