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욱기자
세계 각국이 의료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가운데, 선진국들이 외국인 간호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빈국의 의료 불평등을 가속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간호사를 위한 글로벌 전투가 벌어지면서 각국의 보건 시스템을 습격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호주, 영국 등 선진국들이 외국인 간호사를 자국으로 모셔오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는 호주다. 호주는 올해 3월까지 9개월간 외국인 의료 종사자에게 비자 4950건을 발급했다. 직전과 비교해 48% 급등한 수치다.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2020년 초부터 지난해 8월까지 의료 종사자를 구한다는 광고도 2배 이상 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간호 인력 부족을 호소한다. 호주 최대주인 뉴사우스웨일스(NSW) 지역 간호사와 조산사는 지난해 9월 세 번째 파업에 나섰다. 이들은 "간호사들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려 환자도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영향으로 호주 당국은 지난해 겨울 영국에서 의료 종사자를 찾는 광고를 냈다. 마침 이 시기는 영국에서도 의사와 간호사들이 저임금과 긴 노동시간 등에 대한 불만으로 파업을 벌이던 때였다. 더 좋은 여건을 제공할 테니 호주로 오라는 것이었다.
의료 종사자 모시기에 노력하고 있기는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이 올해 3월까지 12개월간 의료 종사자에게 발급한 비자는 10만 1570건으로, 직전과 비교해 3배 급등했다.
캐나다도 지난해 11월 신규 이민 정책을 발표하며 2025년까지 매년 약 50만명씩 총 145만명의 이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특히 인력난이 극심한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 종사자들에게 영주권을 최우선 순위로 부여하도록 했다.
WSJ은 "간호사와 의사는 훈련에 수년이 걸릴 수 있는 만큼, 부유한 선진국들이 숙련된 외국인 의료 종사자를 구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70여개국이 최근 몇 년간 외국인 의료 종사자들을 더 쉽게 고용하게 하는 법률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다만 선진국들의 이 같은 행보가 세계적으로 의료 불평등을 야기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영국에 온 의료인 중에는 인도, 나이지리아, 짐바브웨 출신이 많다. 독일도 그동안 가나, 브라질, 알바니아 출신의 의료인을 다수 고용해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인구 1만명당 의료 종사자가 15명에 불과해 보건 분야 문제가 심각한 국가는 55개국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아프리카 국가는 37개국(67%)에 달한다.
반면 고소득 국가의 1만명당 의료 종사자는 148명 수준으로, 거의 10배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 등 의료 여건이 열악한 국가에서 의료 인력 유출에 반발하고 있다.
짐바브웨 정부는 올해 4월 자국 의료 종사자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예고했다. 나이지리아 의회는 의사들이 외국으로 이주하기 전에 자국에서 최소 5년을 일하게 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마찬가지로 열악한 환경을 호소하는 한국 간호사들의 '취업 이민'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는 4.4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8.0명)과 큰 격차를 보였다.
미국 간호사국가시험원(NCSBN)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 NCLEX에 응시한 한국인 수는 1816명에 달했다. 2018년(783명)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올해 3월까지 응시자 수는 1758명으로, 최대치를 경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