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아기…꽝!” 7년전 부산 싼타페 급발진사고… 법원 “현대차 책임 없다”

아내·딸·손자 잃은 한무상씨, 대법원에 상고… "공개변론 열어달라"
1·2심 "자동차, 브레이크 페달 밟으면 멈추게 돼 있어… 확실히 밟지 않아"

2016년 8월2일 부산 남구 감만동. 전직 택시기사 한무상씨는 2002년식 현대자동차 싼타페 차량에 아내와 딸 어린 손자 2명을 태우고 물놀이를 하러 해수욕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싼타페는 감만동 부근 솔개다리를 지나자 갑자기 속도를 냈고, 한씨는 브레이크를 여러 차례 밟았지만 통제력을 잃은 차량은 급가속을 시작했다.

부산 감만동 교통사고 현장.<사진=YTN 방송화면 캡처>

한씨의 차량은 흔들리면서 질주했고 차 안은 한순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한씨의 아내가 "아기, 아기"라고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를 끝으로 블랙박스는 꺼졌다. 한씨의 차량은 길가에 주차한 트레일러 뒷부분을 들이받고 전파했다. 이 사고로 한씨를 제외한 가족 4명이 모두 숨졌다. 둘째 손자가 갓 100일을 넘기고 첫 소풍을 가던 날 벌어진 참극이다.

이 사고로 한씨는 교통사고처리법 위반(치사)혐의로 입건돼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고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당시 검찰은 "설사 가속페달을 제동장치로 착각했더라도 시내 도로 주행 중에 급가속에 이를 정도로 가속페달을 힘껏 밟거나, 제동장치를 착각했더라도 14초 동안 계속해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정확히 7년이 흐른 2일, 일가족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참변은 현재진행형이다. 한씨가 현대차와 현대차에 고압연료펌프를 제조·공급한 보쉬코리아를 상대로 낸 1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이 사건 1·2심은 모두 현대차와 보쉬코리아의 완승으로 끝났다. 법원은 현대차와 보쉬코리아가 한씨에게 아무런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본 것이다.

1·2심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를 받아들여 한씨의 차량의 엔진 및 고압연료펌프 주변에서 연료 및 오일 누출 등 작동 이상을 추정할 만한 특이점이 관찰되지 않았다고 봤다. 반면 한씨가 의뢰해 이 차량을 감정했던 박병일 자동차 명장 등의 급발진 주장에 대해서는 "사감정(私鑑定)에 불과하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또 1·2심은 엔진 등의 결함으로 인해 자동차에 구동력이 발생하더라도 브레이크 페달을 제대로 밟기만 하면 자동차는 일정 거리 내에서 반드시 멈추게 돼 있다고 전제하면서, 택시 기사와 택배업 등 장기간 운전업에 종사했던 한씨가 브레이크 페달을 확실히 밟지 않아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추단했다. 한씨가 사고 당시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 페달로 착각해 밟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도 했다.

1·2심 재판부는 "사고 차량의 브레이크 시스템은 정상 작동 상태였다고 인정할 수 있고, 브레이크를 정상 작동시켰다면 일정 거리 내에서 제동됐을 것"이라며 "사고 당시 브레이크 등의 점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할 때, 한씨가 사고 당시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못했거나 착오로 가속페달을 밟았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제조업자의 손해배상책임 책임은 손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입증해야 하는데, 원고가 제출한 사설 감정 결과는 절차적 공정성과 객관성, 감정대상 차량 보존 문제 등 측면에서 신뢰하기 어렵다"며 "결국 이 사고가 싼타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없으므로 원고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한씨는 대법원의 판단을 받기로 하고 상고했다. 한씨는 "1·2심 재판부는 내가 가속페달과 브레이크페달을 오조작해서 사고가 났다고 오인했다"며 "현대차와 보쉬코리아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사건 관련 문서제출명령 이행을 거부하고 있어서 소비자인 내가 급발진 사고 원인을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한데도 1·2심은 내가 증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서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고 주장했다.

한씨의 변호인인 하종선 변호사는 "운전자가 차량을 정상적으로 운행하고 있었는지는 급발진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1·2심은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느냐만 따져 운전을 제대로 했는지 판단한 잘못이 있다"며 "1·2심은 정상적으로 주행하는 차량에서는 나지 않는 굉음이 들렸다는 증인들의 증언을 무시하고, 급발진 엔진소리와 정상 주행시 가속페달을 최대로 밟았을 때 엔진소리의 차이를 검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원고가 제출한 사설 감정서의 감정인들은 전원 국내에서 손꼽히는 자동차 전문가이고, 감정은 언론기관이 촬영하는 가운데 실시했음에도 감정 결과를 믿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은, 대법원에서 인정한 합리성 기준보다도 훨씬 엄격한 비현실적인 절차적 공정성과 객관성을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한씨 측은 "1·2심이 일반인은 밝혀낼 수 없는 소프트웨어 결함에 의한 급발진 사고의 증명 책임을 일반 소비자인 원고에게 부담시켜 패소 판결을 했다"며, 대법원에 공개변론을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하 변호사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BMW 급발진 사건과 이 사건을 함께 묶어 자동차의 급발진에 대한 전문가의 진술을 듣고 국가기관 및 유관 단체 등 참고인의 의견서 등을 바탕으로 상세한 심리와 검토를 해달라"고 밝혔다.

사회부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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