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기자
코로나19 사태가 가라앉으면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다시 증가하면서, 외국인 대상 바가지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상습 바가지 업체들이 특정되고 있지만, 주된 피해자인 외국인 관광객들이 신고를 거의 하지 않아 당국은 실태 파악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4일 '금융·경제 이슈분석' 보고서를 통해 "4월 중 우리나라의 외국인 관광객 수는 90만명으로 2019년 4월 대비 55%의 회복률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지난달 한국을 찾은 관광객은 전년 대비 약 18배 증가했다. 지난달 3일 트립닷컴이 전세계 여행객들의 5월 출발 기준, 한국 여행 예약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예약 수요가 1738% 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관광객 수는 회복되면서, 이들이 찾는 명소의 바가지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서울 명동의 경우, 바가지 및 강매 등 신고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어온다"고 말했다.
대표적 외국인 관광지인 명동은 먹거리 물가가 크게 올랐다. 명동에서는 닭강정 작은 사이즈가 7000원, 중간 사이즈가 1만원, 특대 사이즈가 2만원에 팔리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3000원에 팔린 탕후루는 5000원에 팔리고 있으며, 닭꼬치도 3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랐다. 가격대가 조금 높은 양꼬치의 경우 하나에 8000원에 달한다. 상인들은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내국인들 사이에서도 해도 너무 한다는 분위기다.
관광경찰대에 따르면 명동의 화장품 가게 3곳은 외국인 대상 상습 바가지로 악명이 높다 이 중 한 곳은 '구글지도' 애플리케이션의 최근 리뷰 20개 중 15개가 "직원에게 속아서 바가지 썼다" "다른 가게보다 가격이 비싸다" 등의 내용이다. 이 가게는 현재도 정상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8일엔 일본인 관광객이 온라인에 한국 지역축제 먹거리 물가에 놀란 영상을 올렸다. 그는 영상에서 전남 함평 나비대축제를 찾아 먹거리 가격을 소개했다. 1만원에 달하는 어묵 한그릇을 비롯해, 돼지고기 바비큐 한접시 4만원 등 모두 통상 가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상인에게 어묵을 5000원어치만 살 수 없냐고 물었지만 "그렇게는 팔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한국 물가 실화냐. 먹을 수 있는 게 없다"며 각각 4000원인 번데기 한 컵과 소시지 한 개를 사 먹었다.
일부에선 외국인 상대 업소의 이런 행태를 'K-바가지'라고 비꼰다. K-바가지가 판을 쳐도, 업자에 대한 처벌은 어렵다. 경찰과 서울시는 "피해자가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이기에 신고·고소 등을 하지 않아 처벌에 어려움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관광경찰대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상습 바가지 업체들에 대한 수사를 준비했었지만, 2021년 관광경찰대 산하 수사팀이 해체되며 무산됐다.
낮은 처벌 수위도 도마 위에 오른다. 물가안정법 시행령에 따르면 바가지 행태는 '가격 미표시' 등으로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이 가능하다. 이에 적발된 업소는 1차 위반일 경우 시정 권고 조치가 내려지고, 2번 이상일 경우 위반 횟수에 따라 30만~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수십번 단속에 걸린 업체라 하더라도 영업정지 등 중한 처벌은 불가하다.
가격이 표시돼있다면 과태료 처분조차 어렵다. 사업자가 가격을 올렸다고 해서 행정기관이 사업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는 없다. 표시 요금을 초과 징수하는 것이 아닌 이상 상품을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울산 동구청은 내달 1일 일산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 불공정 상행위 점검반을 편성했다. 하지만 통상보다 비싼 가격을 책정한 것은 점검 대상에서 포함되지 않는다. 점검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점검대상은 요금 과다 인상, 불법 이용료 징수, 가격표 미개시, 표시요금 초과 징수 등이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바가지 행태로) 우리나라의 국가 이미지와 서울의 도시 이미지가 이미 하락하고 있다"며 "(가게에) 상품 가격을 강제할 수 없으니 합리적인 가격을 고시할 수 있도록 계도하고, 비싸게 파는 게 장기적으로는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자정 노력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