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보 하루천자]생각하며 걸으면 나도 어느새 철학자

고대 중국의 노자는 자신이 걷지 않고 세상을 걷게 만든다. 바람처럼 행동한다. 걷는 것은 그가 탄 당나귀이지 노자 자신이 아니다. 동물이나 바람, 우주가 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이 절대적 수동성 속에서 그는 실재적이고 궁극적인 힘, 만물의 움직이는 내적 힘을 발견한다. 독일 철학자 칸트는 매일 오전 4시 45분에 일어나 시계처럼 정확히 일과를 마치고 산책로를 걸었다. 권력과 행정의 중심지인 성을 지나 부르주아들이 살고 있는 구시가지를 거쳐 서민들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부둣가를 지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전히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향했다. 주민들이 그의 산책하는 모습을 보며 시계를 맞추었다는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철학자 데카르트는 "언제나 바른길을 따른다면 아주 천천히 걷더라도 길을 벗어나 달리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로제 폴 드루아는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책세상 펴냄)에서 동서고금 사상가 27명의 철학을 살피고 그 과정에서 걷기의 메커니즘과 생각의 메커니즘을 고찰한다. 그리고 걷기와 우리 사유의 유사성과 연관성을 확인한다. 저자는 "생각의 근육을 키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걸으라"고 권한다.

독일 철학가이자 걷기 예찬자인 알베르트 키츨러도 신간 ‘철학자의 걷기 수업’(푸른숲 펴냄)에서 동서고금의 다양한 철학 이야기를 걷기와 접목해 소개한다. 저자는 프라이부르크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서른한 살 되던 해인 1986년, 남미로 1년간의 도보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영화 제작에 대한 열망을 되찾고, 방향을 틀어 12년간 영화 제작자의 길을 걸었다. 2000년, 코르시카섬으로 떠난 도보 여행을 계기로 그는 철학의 길을 걷는다. 그에게 자연을 찾아 발길을 옮기는 걷기의 가치는 건강 유지나 ‘힐링’ 차원의 휴식 그 이상이다. 바삐 돌아가는 일상을 뒤로하고 자연 속을 여유롭게 걸음으로써 진정한 자기를 만나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걷는 동안 우리의 마음은 더 맑고 더 명쾌해진다.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다시금 알게 된다"면서 "우리는 걷기를 통해 마음을 조율한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갈라져 있던 마음은 다시금 모아지고 내면은 맑아진다"고 말했다.

걷기는 종종 인생에 비유된다. 저자도 "어딘가를 오랜 시간 걸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라. 줄곧 직선으로만 이어지는 길은 없다. 구불구불 곡선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어떤 지점에서는 되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 면서 "인생의 경로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은 결코 일직선이 아니며 순탄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행복이 외부의 목표 실현 여부에 따라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을 유유히 거닐 때처럼 길을 걷는 것 자체가 목표이지,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는 정상에 도달하는 것보다 정상에 오르는 길 자체를 더 사랑하기에,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르는 대신 때로는 몇 시간에 걸쳐 힘든 길을 걸어간다"고 말했다.

바이오헬스부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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