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피아니스트 아브제예바 '올 쇼팽 공연은 13년만'

2010 쇼팽 콩쿠르 우승…여성으로는 45년만
우크라 전쟁 발발 뒤 SNS에 "충격·비극적"
러시아 출신임에도 여전히 활발한 연주활동

지난해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많은 러시아 출신 음악가들이 무대에서 퇴출당했다. 러시아 출신으로 2010년 제16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38)는 예외다. 그는 전쟁 발발 뒤에도 활발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오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독주회도 한다. 아브제예바를 서면으로 만났다.

아브제예바가 무대에 계속 오를 수 있는 이유는 반전 메시지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3월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쟁 때문에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다고 썼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깊은 슬픔이자 고통이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비극이 되고 있다.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희망한다.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함께하는데 음악이 도움이 되리라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확신한다."

음악이 주는 힘을 강조한 아브제예바는 지난해 가을부터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자주 연주했다. 그는 서면 인터뷰에서 "이 곡이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를 매우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프로코피예프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한 때는 1913년이다. 그해 5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시절 막역한 친구였던 막시밀리안 슈미트호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프로코피예프가 슬픔에 잠긴 채 작곡해 슈미트호프에게 헌정한 곡이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아브제예바는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전쟁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을 위로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매우 비극적이고 어둡지만, 또 한편으로 매우 서정적인 멜로디와 캐릭터들이 작품 속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언제나 제 마음을 치유하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사진 제공= 마스트미디어, ⓒSammy Hart]

오는 12일 예술의전당 무대는 아브제예바가 국내에서 8년 만에 하는 독주회다. 그는 2014년과 2015년 국내에서 독주회를 했다.

그는 이번 독주회에서 연주할 곡을 모두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의 곡으로 채웠다. 1부 공연에서 폴로네이즈 2곡, 뱃노래, 전주곡, 스케르초를 연주한다. 2부 공연에서는 자유분방한 감정을 표현하는 마주르카 4곡과 쇼팽의 낭만성이 짙게 물들어 있는 피아노 소나타 3번을 들려준다.

최고의 쇼팽 연주자로 인정받았지만 정작 그는 쇼팽 곡으로만 연주회를 꾸미는 것이 13년 만이라고 했다. 사실상 쇼팽 콩쿠르 우승 무렵의 연주 이후에는 쇼팽의 곡으로만 연주회를 꾸민 적이 없었던 셈이다. 그는 "올 쇼팽 프로그램 리사이틀을 결정하기까지 저 스스로 많은 성장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했다.

쇼팽의 곡으로만 채운 무대를 마련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는 여전히 13년 전 쇼팽 콩쿠르 우승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고 밝혔다.

"쇼팽 콩쿠르 우승은 저에게 더 큰 세상을 경험하게 해준 열쇠 역할을 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환상적인 오케스트라, 멋진 지휘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각기 다른 관객들을 마주하며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좋은 경험이다. 2010년 쇼팽 콩쿠르는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전파된 콩쿠르의 첫 사례 중 하나였기 때문에 전 세계인들이 대회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덕분에 지금도 종종 사람들이 '쇼팽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곡을 아직도 기억합니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항상 감동을 받는다. 또 마르타 아르헤리치(82)와 같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에 매우 행복하면서도, 항상 감격스럽다. 쇼팽 콩쿠르에 참가했을 당시 아르헤리치가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감정이 느껴진다."

아브제예바는 아르헤리치 이후 45년 만에 탄생한 여성 쇼팽 콩쿠르 우승자였다.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사진 제공= 마스트미디어, ⓒChristine Schneider]

코로나19 탓에 한국은 아브제예바에게 소중한 곳으로 각인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첫 해외 공연 장소가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KBS교향악단과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협연 무대였다. 당시 공연은 피에타리 앙키넨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의 데뷔 무대이기도 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륙을 이동하며 했던 첫 해외공연이었다. 당시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올 수 있어 굉장히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제가 그동안 이런 순간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 순간이었고, 아마 평생 기억 속에 남을 공연이 되리라 생각한다. 더욱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앙키넨 음악감독의 취임 무대였기 때문이다."

아브제예바는 당시 한국의 관객들과 음악을 나눌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며 이번 무대에서는 요즘 자신이 느끼는 쇼팽의 음악이 어떠한지 한국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문화스포츠부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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