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전세사기 대책]'변죽만 울린 사후약방문…대출 손보고 교육 제대로'

지난해 말부터 정부가 여러 차례 대책을 발표했음에도 전세사기 피해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 대책이 사전 예방책이 아닌 사후 대책에 집중되고 있어서다. 이에 전문가들은 현재 정부가 내놓고 있는 대책은 임시조치에 불과하다는 진단을 내리는 한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선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전세사기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한 사법부의 신속한 조사와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씨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에 전세사기 피해 수사 대상 주택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헌법학자인 황도수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2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전세사기 행위에 더욱 엄격할 필요가 있고, 정부의 노력이 중요하다"며 "전세사기 피해자인 일반인이 사기꾼들의 자금 유통을 어떻게 추적하겠나. 이런 일은 정부가 앞장서서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관련 대출을 손보고, 자금 조달 능력이 충분한 사람만 임대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문도 연세대 정경대학원 겸임교수도 "전세는 목돈이 있는 사람이 집을 살 수 없을 때 유용한 제도"라며 "미래에 생활방식 변화 등으로 없어질 수도 있겠으나 우선은 사고가 안 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처에 연고를 바르면 금방 낫지만, 침을 바르면 오래 간다"며 "정부 정책은 변죽만 울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 교수는 전세제도가 있는 볼리비아 사례를 들어 "일부 지역에서는 보증금이 일정 비율 이상이면 임차인에게 소유권한을 넘기는 줄로 안다"며 "우리나라도 촘촘하고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세대출 및 보증보험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전세대출 증가세가 조짐만 보였다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보증 한도를 2억원에서 5억원으로 늘려 본격적으로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출 대상을 전세에 맞춘 것이 지금의 불상사를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한 교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낀 은행권 전세대출이 얼마나 성행했냐면, 지점장 등의 인사고과를 전세대출이 좌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황 교수도 이 당시를 지적하며 "‘초이노믹스(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기부양책)’라는 용어를 만든 것도 웃지 못할 일"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일정 평형 이하 전·월세는 정부가 책임을 져 서민들의 삶의 질이 충족되도록 하는 등 임대차 시장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위험 부담에 반전세나 월세가 늘어나겠지만, 전세가 사라지긴 어려운 만큼 전세사기 재발 방지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밝혔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가 악용되니 우리도 월세가 일반적인 선진국처럼 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전세를 싫어하진 않을 것"이라며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당장의 피해를 물어내는 것만이 해결책이 돼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지로 인해 전세사기를 당하는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황 교수는 "등기부등본을 직접 떼 본 사람이 몇이나 되고, 처음부터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겠느냐"며 "작정하고 치는 사기를 막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래서 더욱 기초적인 것부터 실질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건설부동산부 노경조 기자 felizk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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