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상징으로 보는 세상<1>-구급차 속 뱀

편집자주아시아경제는 '하루만보 하루천자' 뉴스레터 독자를 위해 매일 천자 필사 콘텐츠를 제공한다. 필사 콘텐츠는 일별, 월별로 테마에 맞춰 동서양 고전, 한국문학, 명칼럼, 명연설 등에서 엄선해 전달된다. 오늘부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에 담긴 상징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 교양서 <상징으로 보는 세상>을 5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 책에는 동식물을 비롯한 자연과 숫자, 색깔, 생활용품 등 일상 속 여러 대상이 상징하는 의미와 함께 종교와 신화, 철학과 세계사까지 담겨 있다. 저자 김낭예 박사(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어떤 문화를 알게 되면 그 문화에서 성장한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의미 있는 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느 때보다 세계가 가까워진 현대에 상징은 세상을 좀 더 선명하게 보여 주고, 타인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울 것이다. 글자 수 1178자.

구급차에 그려진 뱀과 지팡이는 그리스 신화 속의 태양신 아폴론의 아들이자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것입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사람도 살려 낸다는 명의였고 의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운 교육자였습니다. 의사들의 윤리 강령인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유명한 히포크라테스도 아스클레피오스가 세운 의술 학교 출신이지요.

아스클레피오스의 학교는 병원이면서 신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아스클레피오스를 모시던 사제들이 뱀을 길렀다고 하는데요, 왜 뱀이었을까요? 뱀을 아스클레피오스의 사자(使者)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땅속으로도 다니고 땅 위에서도 움직이는 뱀을 보고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뱀이 지상과 지하, 즉 하늘과 땅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스클레피오스의 조각상은 보통 그가 지팡이를 하나 들고 있고, 뱀 한 마리가 지팡이를 휘감고 올라가는 모습으로 만들어집니다. 하늘과 땅을 중재하는 뱀과 사람들의 생사에 관여하는 의술의 신이라니, 참 잘 어울리지요? 뱀이 지팡이를 감고 올라가는 상징은 현재 세계보건기구의 마크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이 의학의 상징으로 확장된 것이지요.

2021년 12월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당시,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스위스 제네바의 WHO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뒤편으로 보이는 WHO 로고엔 뱀이 지팡이를 감고 올라가는 문양이 들어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두 마리의 뱀이 휘감긴 지팡이도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지팡이로 알려진 카두세우스입니다. 지팡이에 달린 날개는 신들의 말을 빠르게 전하는 헤르메스의 역할을 상징하고, 지팡이를 감아 올라가는 두 마리의 뱀은 치유와 독, 건강과 질병 등 대립하는 두 힘을 나타냅니다. 헤르메스는 이 지팡이를 이용해 사람들을 잠들게 하여 죽은 자를 조용히 저승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아픈 사람을 치유해 주기도 합니다. (중략)

예전에 시골길을 가다 보면 뱀이나 뱀이 벗어 놓은 허물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요, 요즘에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뱀을 직접 보기는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뱀이 상징하는 바는 신화에도, 종교에도, 구급차에도 녹아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제 꼬리를 집어삼키는 뱀 우로보로스는 무한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타투에 쓰이기도 하고, 액세서리의 디자인에도 응용됩니다.

앞으로 구급차를 보면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함께 치유와 재생의 상징으로서 뱀이 떠오르겠지요. 최초의 인류를 유혹해 타락하게 만든 악의 상징이자 보기만 해도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죽음의 상징으로 생각했던 뱀의 다양한 상징 의미를 떠올려 본다면 세상이 한결 더 다채롭게 보일 것입니다.

-김낭예, <상징으로 보는 세상>, 창비교육, 1만5000원

편집국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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