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길기자
기업들이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들의 호소가 수년째 반복되는 레파토리처럼 들리는 것은 누구의 탓일까. 정부나 지자체가 수천만원의 지원금까지 내걸었지만 일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다른 한편에서는 구직 활동도, 취업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쉬는 청년이 5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취업에 성공해 회사에 다니는 청년들의 수도 감소세다. 일자리와 사람과 미스매치, 한국 경제의 불편한 현주소다.
2027년까지 일감을 확보해둔 조선업계의 사정은 심각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과거 조선소에 근무하면 떼돈을 벌지는 못해도 오랫동안 일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고되고 힘든 일이지만 조선소에 정착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몇차례 불황을 겪으면서 그 말은 옛말이 됐다. 원하청 구조가 굳어지고 협력사 대부분이 인력 감축에 나서면서 8년 새 생산기능직 8만여명이 조선소를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사들은 떠나는 인력을 붙잡기 어렵다며 지원을 요청한다. 2021년 이후 국내 조선사들은 친환경 선박을 중심으로 선박 수주량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중국을 제치고 수주량 세계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정작 배를 만들 사람이 없어 외국인 채용이라도 늘려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도 수출 효자품목인 조선업을 지탱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고용지원사업을 운영 중이다. 경남 거제시의 경우 타 시·도에서 10년 이상 생산직 경력자가 거제시로 주소를 옮기고 조선업에 취업하면 연간 최대 136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허나 이러한 혜택에도 업계에서는 연말까지 조선업 기능직이 최대 1만4000여명 부족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제 인력난은 특정 업종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핵심사업으로 꼽히는 반도체 분야도 인력난을 걱정하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오는 2031년까지 국내 반도체 학·석·박사 인력이 5만4000여명이나 부족할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은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하면서 인재 양성에 나섰지만, 대부분 학과는 합격자가 등록하지 않아 추가합격차를 모집하는 실정이다.
산업계 인력난은 통계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달 취업자를 연령별로 보면 60세 이상에서 41만3000명 늘었으나, 60세 이상을 제외한 연령대에서는 10만1000명 감소했다. 20대 이하 청년 취업자는 12만5000명이나 줄어, 2021년 2월 이후 2년 만에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청년층 실업률은 7.0%로 전년 동월 대비 0.1%포인트 상승했다. 30대도 2.7%로 0.1%포인트 높아졌다. 특히 경기 부진으로 제조업 취업자 수가 크게 줄었다. 제조업 일자리는 남아도는데 일하지 않는 청년은 50만명 육박하고 있다. 취업자나 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활동상태를 '쉬었음'이라고 답한 청년층은 2월 기준 49만7000명에 달한다. 2003년 1월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규모다.
청년들이 쉬고 있다고 모두 흥청망청 노는 것은 아닐 것이다. 취업하지 못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저마다 이유도 있을 테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는 일이 더 이상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가 아닌 시대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청년들에게 제조업 일자리는 '매력 없음' 그 자체가 아닐까. 과거부터 이어져 온 노동집약적 성장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현실을 우리 사회는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