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기자
최근 중국 당국이 인공지능(AI)형 챗봇 개발에 뛰어든 중국 IT 기업들에 규제의 칼을 빼 들었다. AI 챗봇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이용자의 질문에 맞는 답변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이는 당국이 통제하고 있는 금기의 정보를 이용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규제만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 기업들이 AI 챗봇 시장을 모두 점유하게 될 경우 중국이 강대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정보 통제와 기술력, 두 가지 모두 잃지 못하는 중국 정부는 지금 딜레마에 빠졌다.
최근 중국 정부는 AI형 챗봇 서비스 제공 금지령을 내렸다. 지난 23일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당국이 텐센트 등 주요 IT 기업에 오픈AI에서 제공하는 ‘챗 GPT 서비스’를 각 기업의 검색 엔진에 연결해 제공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챗 GPT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투자한 기업 오픈 AI가 출시한 AI형 챗봇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중국의 빅테크 기업인 텐센트가 자사의 소셜미디어 서비스인 위챗에서 챗 GPT 접속을 차단한 것도 당국의 지시에 따른 조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중국에서 챗 GPT를 사용하려면 가상 사설망(VPN)으로 당국의 검열 시스템인 ‘만리방화벽’을 뚫어야 한다.
이 같은 조치도 부족했던 것인지 중국 정부는 자국 IT기업들에 챗 GPT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사전에 당국에 보고를 할 것도 요구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중국 정부의 이런 민감한 반응은 챗 GPT로 인해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정보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다. 니혼게이자이는 "챗 GPT 가 서구권의 논문과 서적 등을 기반으로 정보를 습득하는데 이러한 데이터에는 중국에 대한 많은 비판적인 정보가 담겨 있다"며 "현 지도부에 대한 비판적인 답변들 도출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3일 중국의 IT업체인 위안위 인텔리전스가 출시한 AI형 챗봇 ‘챗위안’은 출시 3일 만에 법률 위반을 이유로 서비스가 중단됐다. 챗위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러시아의 침략전쟁"이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아니라며 그간 러시아를 두둔해 온 중국 정부의 입장과는 상반된 견해다. 챗위안은 중국 경제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투자 부족과 주택 거품, 환경 오염 등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으며 낙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라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방침에 맞춰 중국 언론들도 챗 GPT 에 대한 비판 조의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중국의 국영 매체 증권시보(STCN)는 지난 9일 AI형 챗봇을 개발하는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논평을 게재했다. 증권시보는 "챗GPT 관련 주식이 지나치게 과열된 감이 있다"며 "일부 자본들이 투자자들을 유혹해 손해를 보게끔 만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적인 챗GPT 열풍에 힘입어, 올 들어 상승세를 타던 중국 AI 기업들의 주가는 폭락했다. 중국의 AI 기반 안면인식 기술 기업인 ‘클라우드워크 테크놀로지’ 주가는 중국 언론들의 비판적 보도 이후 14% 하락했으며 상하이 증시에서 AI 관련 종목인 ‘베이징 하이톈이성 과학기술’의 주가는 13% 떨어졌다.
당국이 규제의 칼을 빼 들면서 중국 IT기업들의 AI형 챗봇 개발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중국의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는 챗 GPT와 유사한 서비스인 ‘어니봇’을 다음 달 출시하겠다고 밝혔으나, 출시 이후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챗 위안의 개발자 쉬량은 워싱턴포스트에 "바이두가 예상대로 어니봇을 출시하더라도 이른 시일 내에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관건은 중국 정부의 AI형 챗봇 서비스에 대한 검열 여부다. IT업계 관계자들은 AI형 챗봇은 그간 중국 정부가 적용해온 검열 시스템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중국 규제 당국은 인터넷에 게시된 모든 글을 가장 작은 단위의 단어까지 쪼개는 방식으로 정보를 검열하고 있다. 이같은 시스템 하에서는 검색 엔진이 ‘위구르’라는 단어를 검색해도 중국의 인권 탄압에 대한 정보 대신 위구르에 대한 단순한 지리적 정보만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형 언어모델을 활용하는 AI형 챗봇 모델의 경우 하나의 단어 다음에 어떤 단어가 오는 게 적절할지 확률·통계적으로 예측한 뒤 완결된 언어를 만들어 이용자에게 대화형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수많은 확률과 통계를 계산해 유기적으로 언어를 구성하다 보니 기존 당국이 사용하던 방식의 검열 방식을 적용하기 어렵다. WP는 "바이두를 비롯한 중국의 IT 기업들이 AI형 챗봇에 당국이 금기시하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지 검열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설명했다.
AI형 챗봇이 학습해야 할 데이터의 종류를 구성하는 일도 중국 기업들이 처해 있는 대표적 난제다. WP는 "바이두의 AI형 챗봇 ‘어니봇’이 위키피디아와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을 포함한 방대한 서구권 정보를 학습하고 있었다"며 "중국 기업들의 챗봇은 당이 승인한 정보만 학습 데이터로 삼아야 될 것"이라고 밝혔다.
막상 강경한 대응을 펼치긴 했으나 사실상 중국 정부도 심기가 편치만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검열이 적용되지 않은 날것의 정보가 쏟아져 일단 서비스를 중단시켰으나 AI형 챗봇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당국도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과학기술부의 고위 관계자인 챙지창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챗GPT와 같은 기술이 AI와 사회, 경제의 통합을 이뤄내게 만들 수 있으며 많은 산업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했다. 환구시보도 이날 중국 정부가 AI 기술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삼을 것이며 구체적인 지원책이 있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더욱이 중국으로서도 패권국인 미국이 AI형 챗봇 시장을 모두 점유하는 것을 잠자코 보기만은 힘든 상황이다. 시장분석업체 국제 데이터코퍼레이션에 따르면 2026년까지 중국이 AI 산업 육성을 위해 투자하는 금액은 260억달러(34조 372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전 세계 AI 관련 투자 액수의 9%에 달한다.
중국 정부가 자체 데이터를 통해 AI형 챗봇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당의 선전기구로 활용할 수도 있다. 예컨대 AI형 챗봇이 모두 중국 당국이 통제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보를 학습한다면 당국이 입맛에 맞는 정보들만 이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IT업체 마브릿지 컨설팅의 설립자 마크 나트킨은 "만약 AI형 챗봇이 중국 당국의 정책 목표와 발맞춰 개발될 경우 정부가 사람들에게 전달하길 바라는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