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보]명동 속 근현대사의 흔적을 따라 걷다

무심코 지나치던 길 위에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발자취를 느껴보자. 오늘 소개할 코스는 ‘명동 근현대사길’이다. 명동성당에서 시작해 베를린장벽, 이회영집터, 명동예술극장, 환구단을 지나 서울도서관에서 마무리되는 이 코스는 총 2.8km로 한 시간 남짓이면 둘러볼 수 있다. 남산을 등지고 웅장하게 솟아있는 명동성당은 1898년 건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천주교 본당이자 한국 최대 네오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명동성당은 건축물 자체의 가치는 물론이고,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우리네 민초들을 지켜내고 민주주의를 태동시킨 곳으로, 그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아 사적 258호로 지정되어 있다.

명동성당

회색빛 고층빌딩 숲 틈에서 홀로 우뚝 서 있는 붉은벽돌의 명동성당에서 근대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남산을 등지고 드높이 솟아있는 뾰족한 첨탑과 수려한 아치의 본당을 지나,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에 들어서면 우리나라 카톨릭 교회의 성장과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조선 최초의 사제 순교자 김대건 신부의 흉상을 마주하며 수많은 박해 속에서도 꿋꿋이 뿌리내린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되짚어 보자. 발을 들이는 순간 종교가 없는 이조차 경외감에 압도되는 지하성당에는 기해·병인박해로 순교한 성인 9분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프랑스 루르드의 동굴 속 성모상을 연상시키는 최근 지어진 야외기도당의 성모상은 야경이 더욱 아름답다.

명동성당에서 청계천 방면으로 10분쯤 걷다 보면 대로변 한 모퉁이에 생경한 조형물이 등장한다. 청계천 베를린광장이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통일을 기원하며 2005년 조성된 베를린광장에는 독일 정부에서 기증한 베를린장벽 일부와 베를린시의 상징인 푸른색 ‘곰’상이 설치돼 있다. 벽면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서독 시민들이 적어놓은 글귀를 보며 통일된 한반도를 그려본다.

다시 명동 중심가를 향해 명동11길을 따라 올라오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집터를 만날 수 있다. 구한말 일가족이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이회영 6형제의 삶의 터전 앞에서, 내 나라 내 땅을 자유로이 밟고 서게 해 준 선열들의 희생을 기려보면 어떨까.

이제 분위기를 조금 바꿔 명동예술극장으로 발을 옮겨 보자. 1936년 극장이자 영화관으로 건립된 명동예술극장은 이후 서울시 공관, 국립극장 등으로 사용되다 1975년에는 민간에 매각되기도 했다. 이를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인수하여 2009년 국립극단의 전용극장으로 재개관했다.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극장 건물로 눈 호강을 했다면 이번엔 명동을 벗어나 소공동 방향으로 걸어보자. 소공동 어귀 조선호텔 부지 내에 다음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유교의 천자가 하늘에 제를 드렸다던 환구단이다. 일제강점기 본단은 철거되고 현재는 신위를 모셨던 황궁우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고종 황제의 즉위식을 올리던 장면을 떠올려 보니, 다가올 암울한 시대를 차마 상상도 못 했을 순진무구한 선조들의 모습에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드넓은 잔디가 펼쳐진 서울광장을 거닐며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자. 곧 눈앞에 오늘의 종착지인 서울도서관이 위용을 드러낸다. 옛 서울특별시청 건물을 개조해 2012년 개관한 서울도서관에는 54만여 점의 국내외 장서 및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지친 다리도 쉬일 겸 잠시 들러 둘러봐도 좋겠다. <제공=중구청>

지자체팀 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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