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화기자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정석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민낯이 아름다운 자연미인과 같은 도시"라고 서울시를 평가했다. 뉴욕·런던·파리·도쿄 등 전 세계 유명 도시도 갖지 못한 것들을 물려받은 풍요로운 도시가 서울이란 설명이다. 정 교수는 "서울은 산·강·언덕 등 천혜의 자연과 역사, 문화까지 물려받아 태생부터 다 갖춘 그 자체로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도시는 기본(시민의식)을 잘 갖추고 회복력(리질리언스·resilience)이 좋으면서 자기만의 개성, 매력을 마음껏 드러내는 도시"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정 교수의 지론이다.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 비싼 집과 싼 집, 새집과 헌집 등 다양성이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 관광객은 인사동의 허름한 뒷골목에 가서 다른 나라에 없는 것을 보고 감동을 하지, 어디나 있는 높은 빌딩을 보고 감동을 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지난 2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서울시립대학교 연구실에서 정 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좋은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 갖춰야 할 조건이 있나.
▲좋은 도시는 시민의식 등 기본을 잘 갖추고, 회복력이 좋으면서 자기만의 개성, 매력을 마음껏 드러내는 도시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사고나 재해·재난 등으로부터 안전하고 단단해야 한다. 사고·재해·재난이 발생했을 때 회복력, 즉 리질리언스는 공무원들의 대응능력도, 시민들의 행동과 생각도 중요하다. 시민들의 수준으로 그 도시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다른 도시에 없는 그 도시만의 매력은 '정체성(Identity)'이다. 남들 따라하기보다 내가 가진 차별화된 매력을 가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도시의 매력을 시민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서울은 좋은 도시인가.
▲서울은 잘난 도시다. 민낯이 아름다운 자연미인 같은 도시다. 뉴욕·런던·파리·도쿄 등 전 세계 어떤 도시에도 없는 산·강·언덕 등 천혜의 자연을 가졌다. 도시 어디서나 산을 볼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20분 안에 산에 오를 수 있으며, 산에서 도시를 바라볼 수 있다. 강은 도시의 바람통로 역할 등 다양한 기능을 한다. 한강은 강폭이 평균 1㎞로 센강이나 템스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언덕은 샌프란시스코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강남도 언덕 지형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을 두루 갖춘 도시는 없다. 게다가 역사와 문화까지 조상에게 물려받아 태생부터 다 갖춘 그 자체로 아름다운 도시다. 이런 자연과 역사, 문화 모두가 가치 있는 서울의 자산이다.
-평소 '생태도시', '차 없는 도시'를 강조해 왔는데.
▲스페인의 폰테베드라는 인구 6만의 소도시지만, 등록 자동차 수가 2만6000대에 달하는 '자동차만 가득한 사막과 같은 도시'였다. 1999년 당선된 미구엘 로레스 시장은 도심부 도로의 90%, 외곽도로 70%를 차 없는 도시로 만들고, 자동차 시내 주행 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했다. 10년 후인 2009년 폰테베드라에서 교통사고 사망자는 제로(0), 도심 교통량은 77%, 구시가지 교통량은 99%, 1인당 탄소 배출량은 70% 각각 감소했고, 대기질은 67% 향상됐다. 범죄율도 떨어져 살기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인구가 1만5000명이나 늘었다. 자동차가 안 다니면 망한다고 반대하던 도심의 상인들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북적거리자 미구엘 시장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폰테베드라처럼 서울 도심을 차가 아닌 시민들에게 돌려줄 때 시민들의 삶은 더욱 윤택해질 수 있다고 본다.
-서울이 '차 없는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서서히 변화를 주면 된다. '차 없는 거리'는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오전부터 오후 한두시까지만 주요 도로의 차량 통행을 막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매주,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정기적, 반복적으로 하면 아이들이 와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시민들도 산책하고, 관광객도 걸어 다닌다. 주변 가게의 매출도 올라가고, 공해도 줄어 시민들의 건강도 좋아진다. 콜롬비아 보고타는 차 없는 거리를 매주 하는데 차 없는 거리의 총연장이 130㎞다. 보고타 시내 도로 거의 전부다. 보고타시의 자체 연구 결과, 차 없는 거리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활동량은 그렇지 않은 시민들에 비해 4배나 많았다. 운동량이 많아지면서 시민들이 건강해지고, 의료비도 절감됐다. 일부 구간에서 대중교통은 다니게 할 수도 있다. 차 없는 도시가 되면 시민 생활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시민들의 삶은 훨씬 더 여유로워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대자보(대중교통, 자전거, 보행)'의 확대는 매우 중요하다. 선진국들이 대중교통 무료화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서울의 도시계획과 도시설계를 평가하면.
▲도시계획은 도시의 꿈, 도시의 미래다. 서울시 도시계획은 서울의 미래를 그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설계는 그 미래를 좀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려주는 것이다. 서울의 다양한 공간을 배치하고, 그에 맞는 제도를 수립하는 것이 도시계획이라면, 그 공간에 배치되는 건물들의 높이를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지, 어떤 건물을 보존하고, 어떤 건물은 철거해야 할지 등을 정하는 것은 도시설계다. 서울의 도시계획이 아쉬운 점은 시장이 바뀌면 도시계획도 바뀐다는 점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도시계획과 도시설계의 핵심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도시'다. 그런 도시의 특징을 유지하기 위해서 언덕에 있는 건물과 언덕 아래에 있는 건물들은 높이 규제를 받는다. 샌프란시스코는 시장이 바뀌더라도 이런 도시계획은 바뀌지 않는다.
-100년 후 서울을 위한 도시재생 플랜을 세운다면.
▲우리는 재생도 개발처럼 접근하려 한다. 낡은 과거의 흔적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개발 시대의 방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물건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명을 다루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브라질 쿠리치바시는 1960년대 급속한 공업화로 인구 증가와 공해 등에 시달렸다. 자이메 레르르네 시장이 취임하면서 ‘도시침술(urban acupuncture)’ 정책으로 세계 생태 수도라는 별칭을 얻으며 친환경 도시의 본보기가 됐다. 서울은 오래된 도시다. 오래된 만큼 고칠 것도 많다. 작게 헐고 고치거나, 리모델링해 도시의 생명을 지속시켜야 한다. 앞으로의 도시재생 방식은 ‘크신재’에서 ‘작고채’로 변해야 한다. 크게, 신개발하고 재개발하는 방식에서 작게 고치고, 채우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크신재는 개발 방식이고, 작고채는 재생 방식이다.
-재개발·재건축을 지양하려면 보다 강력한 규제가 필요한데.
▲도시계획을 지키고,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공적 규제는 꼭 필요하다. 시민의 안전, 환경·역사·문화, 그리고 공익을 지키기 위해서다. 잘못된 규제는 풀어야 하지만, 공익과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는 유지하고 더 강화해야 한다. 도시계획의 핵심이 공적 규제다. 미국의 ‘유클리드 지역제(Euclidean Zoning)’를 반면교사 삼으면 된다. 유클리드 지역에 공장이 들어와 가동하면서 공해가 발생했고,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자 시에서 주거지역 가까이 공장을 못 짓게 규제했다. 이에 공장주가 사유재산 침범이라며 소송을 걸지만, 법원은 "개인의 개산권은 마땅히 존중해야 하지만, 그 재산권의 행사로 다수 시민의 공익이 심각하게 침해된다면 재산권을 규제할 수 있다"고 판결한다. 미국의 도시계획의 권위를 확립한 계기다. 시장이 바뀌더라도 도시계획의 영속성은 유지돼야 하고, 사대문 안에서만큼은 더욱 강력한 규제를 통해 서울의 가치들을 보존해야 한다. 외국 관광객은 인사동의 허름한 뒷골목에 가서 다른 나라에 없는 것을 보고 감동을 한다. 어디나 있는 빌딩과 아파트를 보고자 한국을 찾는 것은 아니다.
-서울은 미래에 어떤 도시가 돼야 하나.
▲서울은 진짜로 가진 게 많은, 보물이 많은 도시다.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가치를 가진 도시다. 시장이 이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다음은 시민들의 인식이다. 서울 시민들이 서울의 가치를 깨닫고, '그래 서울은 이런 도시야, 나는 이런 대단한 도시에 살고 있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오래된 것을 폄하하고 지우기보다 그것들을 예우하고, 공존해야 한다. 다양한 것들, 옛것과 새것이 공존, 상생하는 도시가 돼야 한다.
<i>정석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북촌 한옥마을과 인사동 보전, 암사동 서원마을 등 서울 곳곳에서 30여년간 굵직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해온 도시설계 전문가다. 서울대학교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3년간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15년간 대학에서 학자로 "어떤 도시가 좋은 도시인가", "도시는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에 매달리고 있다. 저서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 <도시의 발견:행복한 삶을 위한 도시 인문학>, <천천히 재생> 등과 연구 저서 <서울시 보행환경 기본계획>, <북촌 가꾸기 기본계획> 등이 있다.</i>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