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영기자
[아시아경제 차민영 기자] KT가 새 대표 선임 절차에 나서며 구현모 현 KT 대표이사 사장의 연임이 확정될지, 제3의 인물이 등장할지 여부에 재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구 대표의 연임 적격 여부를 심사한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가 '적격' 판정을 내렸지만 구 대표는 "복수 후보와 경쟁하겠다"며 경선 구도를 자처했다. 현직 대표의 연임 우선심사를 허용한 KT 내부 규정을 두고 국민연금공단이 '셀프 연임 우려' 등을 직접 언급하면서 절차적 공정성에도 이목이 쏠렸다.
구현모 대표가 넘어야 할 관문 중 하나는 '셀프 연임' 논란이다. 서원주 신임 국민연금공단 기금이사(기금운용본부장)는 27일 취임 일성으로 포스코와 KT를 사례로 들며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 강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서 신임 이사는 "소유분산기업들이 CEO 선임을 객관적·합리적이고 투명한 기준에 따라야 불공정 경쟁이나 셀프연임, 황제연임 우려가 해소되고 주주가치에 부합한다"며 "이사회 내부에서 기회를 차별하거나 외부인 참여를 제한하면 주주들은 잠재 후보를 모른 채 한 사람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유분산기업은 KT나 포스코, 금융지주처럼 뚜렷한 최대주주가 없는 기업이다. 현재 KT의 최대주주는 지분 10.35%를 보유한 국민연금으로 지분 5% 이상 주요주주도 신한은행과 영국계 투자사인 실체스터 인터내셔널 인베스터즈 뿐이다. 나머지 57.4% 지분은 소액주주가 들고 있다. 의결권을 쥔 국민연금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민연금의 경우 지난 3월 KT 주주총회 때 박종욱 경영부문 사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반대해 무산시키기도 했다.
이날 서 신임 이사의 이례적인 기자간담회를 두고 업계에선 국민연금이 구 대표에게 공정성 잣대를 들이댔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 대표의 연임 우선심사가 전체 주주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역시 이달 8일 기자간담회에서 "소유분산기업이 대표이사나 회장 선임 및 연임 과정에서 현직자 우선 심사와 같은 내부인 차별과 외부 인사 허용 문제를 두고 쟁점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회사명이 언급되지 않았으나 포스코와 KT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윤석열 정부의 의중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의 강경한 기조는 이달 13일 '연임 적격' 판단을 받은 구 대표의 경선 역제안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외부 후보들에게 문을 열라'는 입장이다. 서 이사는 "내부와 외부에서 최적임을 찾을 수 있도록 후보자 공모 등을 통해 제한 없이 후보자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며 "셀프연임 우려가 없도록 추천위원회를 기존 이사 중심에서 명망 있는 중립적 새로운 인사를 중심으로 구성해야 공정성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KT 지배구조위원회가 대표이사 후보를 선정하는 방안은 크게 내부 추천과 전문기관의 외부 인재 추천 루트로 나뉜다. 지난주 그룹 내에서 사내 후보들을 물색한 KT는 외부 추천 인사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KT 홍보팀은 현재 "구체적인 일정이나 자격 요건 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며 해를 넘기는 순간까지 함구 중이다. KT는 황창규 전 회장 후임 인선을 찾던 2019년 경선 때는 외부공모·심사 일정을 낱낱이 공개했다.
구 대표 본인 스스로 안고 있는 정치·사법 리스크도 있다. 구 대표는 회삿돈으로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의 KT 제2 노조인 KT새노조는 성명을 내고 "구현모 대표는 현재 정치자금법(위반)과 횡령으로 약식명령 1500만원 벌금형에 처한 후 정식재판을 청구해 진행 중인 범죄 피의자"라며 연임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1월 구현모 대표 등 임원 10명을 정치자금법 위반 및 업무상횡령 혐의로 약식기소했다. 법원은 지난달 구 대표에게 벌금 1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지만, 구 대표는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새노조에 따르면 구 대표는 3년 전인 2019년 사장 선임 당시에도 '재임 기간 중 범법 행위가 밝혀지면 사임한다'는 조건부로 이사회를 통과했다. 이제라도 이사회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게 새노조 측 입장이다. 다만, KT는 금고형 이상일 경우에만 사임 권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직접적인 결격 사유는 아니다.
쪼개기 후원 혐의는 경영 손실로 직결됐다. KT는 지난 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회계처리 부실로 630만달러(약 75억원)의 과징금도 물었다. KT 임직원들이 국회의원들에게 부적절한 방법으로 정치후원금을 제공한 의혹, 베트남 정부사업 수주를 위해 대가성 금품을 제공한 의혹 등이 문제가 됐다. KT측은 SEC가 제기한 혐의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과징금 부과 명령을 준수했다. 경제개혁연대는 KT 감사위원회에 "합의한 제재금만큼 회사가 입은 손해 회복을 위해 책임 있는 전현직 임직원들을 상대로 변제 요구 또는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라"며 "관련 사건에서 유죄가 선고되거나 불법행위가 확인된 임직원을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KT의 보안 계열사인 KT텔레캅에 대해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최근 조사에 착수한 점도 현직 대표인 구 대표에게 리스크 요인이다. KT텔레캅은 KT가 87.73%의 지분을 가진 국내 보안업체다. KT텔레캅은 시설관리 사업을 외주 용역업체에 위탁하는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현모 대표의 사내 지지 기반이 약하다는 점도 연임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관측된다. 30년 이상 통신업계에 종사한 원로급 인사는 "구 대표가 2019년 경선 때도 다른 후보들에 비해 약하다는 평이 많았다"며 "지금의 야당 계열 인사가 구 대표를 밀어준 덕분에 올라갈 수 있었다. 반대파들이 (이사회에)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구 대표의 요청에 따라 연임 우선심사를 맡았던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에서 이달 8일 첫 회의 때 '연임' 결과로 이어지지 않은 배경에도 이처럼 복잡한 관계가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역대 CEO 중 연임에 사실상 성공한 사람은 전임인 황창규 전 회장뿐이다. 황 전 회장은 2017년 '최순실 사태'로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비교적 적은 마찰음 속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황 전 회장은 당시 CEO 추천위원회의 연임 적격 판단을 받아 3월 주총에 차기 회장 단독 후보로 올랐다. 이에 앞서 이석채 전 회장, 남중수 전 사장은 연임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정권 교체기 속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며 불명예 퇴진했다.
한편, 구현모 대표가 2020년 3월 대표이사 취임 후 줄곧 강조해왔던 '디지코(디지털 플랫폼 기업) KT'도 일부 부작용을 낳았다. 탈(脫)통신을 주력 화두로 내세우면서 기업가치 제고와 기업간거래(B2B) 서비스 매출 신장 등 성과를 거뒀지만 본 업무인 통신 업무에 소홀했다는 비판은 피하지 못했다. 2018년 '아현 화재' 이후 3년 만에 발생한 작년 10월 발생한 'KT 유·무선 네트워크 장애'가 대표적이다. 망 고도화 작업 과정에서 통신사의 관리 시스템 부재가 핵심 원인이었다. 이후에도 통신 설비투자(CAPEX) 금액이 줄곧 감소하면서 경쟁사를 포함해 KT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지속해서 제기됐다. KT의 CAPEX 규모는 2021년 2조8551억원으로 지난해(2조8720억원) 대비 169억원(5.6%) 감소했다. 5G 서비스 원년이던 2019년보다는 6200억원가량 줄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