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선기자
2020년 12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재심 청구인 윤성여 씨가 무죄를 선고받고 법원 청사를 나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공병선 기자] '범행도구는 손톱깎이.' 1986년 10월 경기 화성에서 한 여성이 죽은 채로 발견됐다. 알몸에 성폭행을 당한 흔적까지 보였다. 이에 경찰은 용의자 A씨를 붙잡았다.
A씨는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 하지만 반성문과 자수서를 수차례 작성하며 경찰이 만들어낸 허위 자백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처음에 A씨는 범행 도구를 면도칼이라고 했다가 이후 창칼이라고 바꿨다. 아울러 창칼을 하천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의 진술대로 하천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천에선 창칼이 아닌 손톱깎이가 발견됐다. 이후 자수서 내용은 또 변경됐다. A씨는 경찰의 짜맞추기식 수사 때문에 면도칼도 아니고, 창칼도 아닌 7cm 길이의 손톱깎이로 여성을 살해한 범죄자로 옥살이를 하게 됐다.
1986년 엉뚱하게 붙잡힌 용의자 A씨가 진술한 범행도구인 손톱깎이. 그는 처음에 범행도구가 면도칼이라고 했다가 이후 창칼, 손톱깎이로 계속 진술을 바꿨다. 진실화해위는 압수 물품에 짜맞춰 허위자백을 유도했다고 밝혔다. /출처=진실화해위
지난 9일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했다. 진실화해위는 신청인 윤성여씨 등 7명이 억울하게 용의자로 지목돼 옥살이를 했다고 밝혔다.
윤씨는 20년 동안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인물이다. 농기계 수리공이었던 그는 1988년 이춘재가 14살 미성년자 성폭행 및 살인사건의 범죄자로 대신 지목됐다. 그리고 온갖 모진 고문을 당하기 시작했다. 의자에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렸고 한쪽 다리가 불편한 그에게 쪼그려뛰기를 시켰다.
이외 피해자들도 수사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 잠 안 재우기부터 시작해 앉았다 일어나기, 따귀, 협박, 욕설 등에 시달렸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소수자라고 볼 수 있는 장애인, 미성년자, 이혼한 독신자, 전과자 등이었다. 경찰은 혐의없음으로 결론 난 사람들까지도 일상적으로 따라다니며 감시했다. 일종의 사회적 낙인을 찍은 셈이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가운데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도 4명이나 된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용의자들은 뚜렷한 혐의 없이 전과자, 홀아비, 불량배, 독신자라는 이유로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자백을 강요받았다"며 "국가가 위법한 공권력으로 중대한 인권을 침해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신청인 및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이들의 피해와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도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