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김혜원기자
[아시아경제 세종=김혜원 기자] 우리나라 농촌이 ‘농촌다움’을 잃고 늙어가고 있다. 유해 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이 농촌 마을 인근에 입지하고 마을 내 축산의 악취는 주민 갈등을 유발한다. 2012년 이후 급증한 태양광 에너지 시설은 자연경관과 농촌다움을 훼손하고 생활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농촌공간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를 놓고 고심에 빠졌다. 대도시 과밀화와 농촌 소멸이라는 국가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농촌의 잠재력에 주목하며 ‘농촌다움의 회복’이 국정 과제로 급부상하는 분위기다. 농촌이 지닌 풍부한 자연경관과 생태환경, 농촌 고유의 공동체 문화는 지역 불균형과 인구 감소를 해결할 열쇠이기도 하다.
23일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 따르면 최근 ‘농촌다움’에 기반한 자체 개발계획 수립에 나선 대표적인 곳은 전북 고창군이다. 군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협력해 산지·구릉지·하천·농지 등 지역 고유 경관을 포함한 고창군의 자원을 세심하게 연구했다. 시·군·구 단위 기초자치단체뿐 아니라 범국가 차원에서 중장기 농촌공간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다. 손용훈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이 공동 주관한 ‘농촌다움 포럼’에서 "지방 소멸 우려가 높지만, 동시에 새로운 농촌 미래상을 구상할 기회의 시기가 도래했다"면서 "중요한 것은 농촌공간의 가치 및 자연환경 보전을 위한 적절한 규제와 각 지역 특성에 맞춘 합리적이면서도 현장에서 작동 가능한 공간계획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는 농촌공간 재구조화와 기능재생 계획 수립 의무화와 농촌특화지구(7개) 도입을 골자로 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농촌공간계획 수립을 위한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하고 농촌특화지구 입지·계획 기준의 객관적 논리도 마련해야 한다. 일자리·주거·복지를 아우르는 농촌다움 회복형 사업화 모델도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법 제정에 필요한 각종 세부 지침이나 근거 마련은 농촌진흥청이 뒷받침하고 있다. 농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은 올해 말까지 농촌지역 공간 데이터베이스(DB) 표준화를 50종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또 경관농업·농업유산 등 농촌특화지구 지정 기준을 12월 중으로 설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농촌의 유휴공간을 활용한 공간재생 모델 안도 연내 도출할 예정이다. 김상범 국립농업과학원 농촌환경자원과 농업연구관은 "농촌 삶의 질을 높이고 청년층과 도시민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농촌공간계획의 법제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일터로, 쉼터로, 삶터로서 농촌공간의 기능 재생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그러기 위해서는 데이터 관리 체계가 시급하고 농촌특화지구 지정 기준과 설정 방법, 사례 등 현장 수용성을 위한 연구개발(R&D)이 선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윤석열 정부 임기와 맞물려 2027년까지 로드맵도 짜여 있다. 먼저 생활·사회·환경·문화 부문별 서비스·인프라 데이터 구축 및 표준화를 마친 뒤 데이터 기반의 농촌공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농촌재생지수를 개발하는 게 최종 목표다. 농촌다움 보전을 목적으로 한 농촌공간계획은 내년부터 계획지구 조성 모델을 개발해 현장에 적용하고 인구, 주거·정주환경, 생태계 등을 고려한 농촌다움 공간 관리 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다. 공간기능 평가 기준과 모델도 만든다. 궁극적으로 농촌공간은 디지털화로 탈바꿈하고 탄소중립 기반의 에너지 자립형으로 재생한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농촌공간계획 정책을 검토하고 의견을 모으고, 분야별 이슈나 개선 방안을 도출하는 민관학 창구로서 지난 6월부터 운영 중인 ‘농촌다움 포럼’은 지난달까지 3회 열렸다.
조영재 충남연구원 박사는 "농촌공간계획이 현장 특성에 맞는 규제와 인센티브를 선택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차희 국토연구원 박사는 "농촌특화지구가 기존 농촌 기능을 유지·강화하면서 새로운 농촌다움을 확장하게 되면 지역 특성에 따른 다양한 차별화된 공간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세종=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