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 용어]고무처럼 늘어나는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

LG 디스플레이가 8일 공개한 차세대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 / 사진=LG 디스플레이 공식 홈페이지 캡처

접거나 비틀거나, 심지어 고무처럼 죽 잡아당길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있다면. 전자기기의 활용도는 가히 무궁무진할 것이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차세대 기술로 손꼽히는 '스트레처블(stretchable·신축성) 디스플레이' 이야기다. 한국·일본·중국 등 업계 선도국은 이미 '최초 스트레처블 개발국' 타이틀을 두고 총성 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오늘날 가로 세로로 접히는 '플렉서블(flexible·휠 수 있는) 디스플레이'는 이미 최신예 스마트폰에 도입됐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드·플립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스트레처블은 이보다 한 차원 높은 유연성을 지닌다. 휘거나 접히는 것은 물론, 비틀고 잡아 늘여도 멀쩡하게 기능한다.

스트레처블이 대량 생산된다면 응용 가능한 분야는 거의 무한하다. 환자의 피부에 부착해 실시간으로 체내 건강을 모니터링하는 바이오 센서, 심지어 섬유에 넣어 '스마트 섬유'도 구현할 수 있다. 사실상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소비재의 전자기기화를 가능케 하는 셈이다.

스트레처블 상용화 둘러싸고 韓·日·中 3파전

스트레처블의 잠재력을 알아본 디스플레이 산업 3강 한국·일본·중국 등은 일찍이 프로토타입 개발에 뛰어들었다. 2017년 삼성 디스플레이는 세계 정보 디스플레이 학회(Society for Information Display·SID)에서 9.1인치 OLED 스트레처블을 선보여 경쟁의 포문을 열었다.

일본 도쿄대가 지난 2018년 공개한 두께 1mm 수준의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 / 사진=도쿄대 홈페이지 캡처

다음 해 일본 도쿄대 연구진은 두께가 1mm에 불과한 스트레처블인 '스킨 일렉트로닉스'를 개발해 주목받았다. 이 디스플레이는 극히 가늘고 신축적이라 사람의 피부에 부착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저가 LCD(Liquid Crystal Display·액정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점해 세계 최대의 디스플레이 제조사 반열에 오른 중국 BOE도 지난해 '기리가미(Kirigami)'라는 이름의 스트레처블 제품을 공개한 바 있다.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는 2019년부터 스트레처블 개발을 국책과제로 추진, LG디스플레이를 총괄 주관기업으로 선정했다. 이후 3년의 연구 끝에 LG는 8일 세계 최초의 고해상도 스트레처블 화면을 공개했다. 과거 다른 기업들이 만든 스트레처블은 간단한 숫자나 패턴을 표기하는 데 그쳤지만, 이번에 LG가 만든 디스플레이는 일반 가정용 모니터에 근접한 성능을 보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스트레처블 핵심은 '마이크로 LED'…수율 안정화 필수

그러나 스트레처블의 실용화까지는 여전히 먼 길이 남아있다. 스트레처블은 기존 디스플레이보다 훨씬 양산하기 어려운 부품을 쓰기 때문이다.

화면을 구부리거나 접을 수 있는 플렉서블을 실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디스플레이를 이루는 차세대 소자, 즉 'LED(Liquid Emitting Diode·발광 다이오드)' 기술의 발전 덕분이었다. 삼성, LG 등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가로·세로 길이가 500마이크로미터(?m·m의 100만분의 1)에 불과한 '미니 LED'를 만들었는데, 이 미니 LED를 탄력성이 강한 특수 플라스틱에 접목해 만든 디스플레이가 플렉서블이다.

스트레처블은 플렉서블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스트레처블에 쓰이는 LED는 '마이크로 LED'라고 불리는 첨단 소자로, 가로·세로 길이가 10~50?m 수준에 불과해 미니 LED보다도 훨씬 작다. 이런 마이크로 LED를 신축성이 뛰어난 소재에 촘촘히 배열하면 스트레처블을 만들 수 있다.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경도가 높은 광물로 알려진 사파이어는 미세 공정을 하기 힘들다. 마이크로 LED의 가격이 높은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사진은 사파이어 웨이퍼의 원료인 사파이어 잉곳 / 사진=한국 정보 디스플레이 학회 홈페이지 캡처

마이크로 LED는 실리콘 소재를 이용한 일반 반도체와 달리, 사파이어 웨이퍼를 기반으로 제조한다. 사파이어는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한 물질로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나노미터(nm) 단위의 가공을 하기 매우 까다롭다. 이런 이유로 마이크로 LED 가격은 상용화하기에는 지나치게 비싸다. 일례로 삼성전자가 지난해 '110형 마이크로 LED TV'를 처음 출시했을 때 소비자 가격은 무려 1억7000만원에 달했다.

삼성의 110형 마이크로 LED TV / 사진=연합뉴스

즉 스트레처블의 상용화 가능성은 삼성, LG 등이 마이크로 LED의 수율을 안정화해 부품 가격을 낮출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현재 두 기업은 고가의 프리미엄 TV 시장에 먼저 마이크로 LED 제품을 출시해 수요를 늘릴 방침이다. 삼성은 최근 가정용 89인치, 101인치 마이크로 LED TV 모델의 전파 인증을 받았고, LG 또한 지난달 3일 136인치의 초대형 마이크로 LED TV의 전파 적합성평가 인증 등록을 완료했다.

시장조사기업 트랜드포스는 올해 마이크로 LED 시장 규모가 5400만달러(약 744억원)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매년 204%의 성장률을 기록해 오는 2026년에는 45억달러(약 6조2037억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범수 산업 매니징에디터 answer@asiae.co.kr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편집국 신범수 산업 매니징에디터 answer@asiae.co.kr편집국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