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1리터 3000원' 시대 현실화…밀크플레이션 우려(종합)

소비자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장바구니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19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세종=손선희 기자, 송승윤 기자] 낙농가와 유업계의 원유(原乳) 가격 협상이 마무리된 가운데 이번 원유 가격 인상으로 우유 등 유제품 가격은 일제히 오를 전망이다. 유제품뿐만 아니라 우유가 들어가는 빵이나 아이스크림 등의 재료비도 올라 식품업계 전반의 제품 가격이 상승하는 ‘밀크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낙농진흥회는 전날 이사회를 통해 원유 가격을 리터당 947원에서 999원으로 49원 올리기로 결정했다. 원유 가격 인상이 지연된 점을 감안, 올해는 리터당 3원씩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해 실제로는 리터당 52원이 오른다. 내년부터는 리터당 49원의 인상분이 적용될 예정이다. 이번 원유 가격 인상은 지난 2020년 8월 낙농진흥회가 21원 인상을 결정한 이후 2년 3개월 만이다.

정부는 그간 추진해 온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내년부터 본격 도입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앞으로는 원유가격 조정도 기존처럼 매년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비 변동 폭 ±4%' 조건에 부합해야만 협상요건이 발동되도록 했다. 즉 생산비 변동 폭이 크지 않을 경우 3년 이상이 지나더라도 원유가격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관련해 김정욱 농식품부 축산정책국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경제 불확실성 때문에 전반적으로 소비가 위축되고 있고, 특히 음용유 소비가 지속해서 줄어 유업체에서 큰 폭으로 유제품 가격을 인상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측한다"면서 "간담회 등을 통해 여러가지 식품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흰우유 가격의 경우 인상을 덜 하도록 하고, 가공제품은 이미 여러 업체에서 (가격을) 인상한 바 있지만 추가적인 인상을 자제하거나 인상폭을 최소화하도록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원유 가격 인상은 2013년 원유가격 연동제가 시행되면서 106원이 한꺼번에 오른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이뤄졌다. 2014년과 2015년에는 원유 가격이 동결됐고 2016년은 18원 인하됐다. 이후 2017년 동결을 거쳐 2018년 4원 인상된 원유 가격은 2019년 또 동결된 뒤 2020년엔 21원 인상됐다. 당시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가격 적용이 1년 유예되면서 실제론 지난해 8월 이 가격이 적용됐다.

통상적으로 원유 기본가격이 정해지면 서울우유, 매일유업, 남양유업 등 대형 유업체들이 줄줄이 우유 가격 인상을 단행해왔다. 낙농가와 유업체는 보통 6월부터 원유 가격 협상을 시작해 8월에 새로운 가격을 적용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가격 결정 체계를 기존 생산비 연동제에서 용도별 차등가격제로 변경하는 내용의 낙농제도 개편안을 둘러싸고 양측이 견해차를 보이면서 8월을 훌쩍 넘긴 이후에도 협상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낙농가는 제도 개편에 크게 반발했으나 여러 번 협상 끝에 협조하기로 입장을 바꿨고, 올해 9월에서야 낙농진흥회 이사회가 열렸다. 이후 같은 달 20일부터 원유가격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원유 가격 조정과 낙농제도 개편 방안 등의 논의가 이뤄졌다.

새 원윳값이 리터당 49원에 소급분 3원을 더한 52원으로 결정되면서 현재 리터당 2700원대 중반 수준인 흰 우유의 소비자 가격은 3000원을 넘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지난해 원유 가격은 리터당 21원 인상됐는데 흰 우유 소비자가격은 1리터 기준 150~200원 오른 바 있다. 통상 우유 소비자 가격이 원유 가격 인상분의 10배 정도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번 인상 가격을 생각해보면 리터당 400원 후반에서 500원 사이에서 인상 폭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장바구니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19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이는 우유를 비롯해 원유를 사용하는 크림류나 치즈, 아이스크림 등 다른 유제품의 가격을 끌어올릴 전망이다. 업계에선 유제품 인상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원유 가격 인상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된 만큼 곧바로 도미노 인상이 이어질 공산도 크다. 유제품 외에도 빵이나 과자 등 제조 식품 전반의 가격 상승 가능성도 있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지난 4월 치즈 전 제품 가격을 9% 올린 데 이어 지난달 체더치즈 등 일부 치즈 제품 출고가를 약 20% 올렸다. 남양유업도 이미 상반기에 드빈치 등 치즈 제품을 약 10% 올렸는데 이달부터 발효유와 치즈 등 일부 유제품 가격을 10% 이상 인상하기로 했다. 매일유업은 지난달 발효유 제품 가격을 15~25% 올렸고 사워크림과 휘핑크림 가격도 6∼7% 올렸다. 이번 협상 이후 올해 안으로 또다시 가격 인상이 이어지면 업체별로 많게는 1년에 3번까지 제품별 가격 인상이 이뤄지는 셈이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르면 이달 말이나 다음 달부터 우유 가격 인상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원유 가격을 비롯해 고환율 상황이 겹치면서 원재료비와 물류비, 인건비까지 급등했고 업체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세종=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송승윤 기자 kaav@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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