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조기자
[아시아경제 노경조 기자]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집값은 떨어지고 거래절벽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로또 분양은 옛말이 됐고 서울 청약 열기도 이미 가신 지 오래다. 집값 폭등 원인인 '저금리, 과잉 유동성'의 시대가 끝나고 '금리 인상, 긴축의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발 금리 인상 영향 등으로 '거품(버블) 붕괴' 수준의 집값 폭락이 발생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지금의 부동산 가격 하락은 하향 안정화에 가깝다는 진단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 정부 기간 집값이 급격히 올랐던 만큼 현재 상황은 부동산 시장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건정연)은 지난달 발간한 '2022년 3분기 지표로 보는 건설시장과 이슈'에서 매매·전세가격 변동 정점이 지난해 11월이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경제는 4회에 걸쳐 국내 부동산 시장의 현주소와 원인을 짚어봤다.
◆고평가 무너진 세종·인천 집값…급락에 투기과열지구 해제
집값 거품 붕괴는 일종의 기저효과를 수반했다. 지난 2020년과 2021년 각각 상승률 1위를 기록했던 세종·인천 집값이 급락한 것이다.
11일 부동산R114 렙스 조사에 따르면, 집값 하락세가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해 10월 말 대비 올해 9월 말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은 0.46%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세종, 인천은 각각 4.31%, 2.99% 감소했다. 이어 대전(-2.17%), 대구(-1.95%) 순으로 낙폭이 컸다.
세종은 '행정수도 완성론'에 힘입어 2년 전 한국부동산원 통계 기준 연간 아파트 매매가격 최고 상승률(44.9%)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지부진한 이전 속도에 금리 인상 등 외부요인까지 더해지면서 집값 상승세가 꺾였고, 지난 1년여간 전국 시·도에서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지난해 9월 중순까지 누적 상승률 17.2%에 빛났던 인천 집값도 연말 이후 하락장에 무너졌다. 앞서 전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서울 동쪽으로만 쏠리던 눈이 인천까지 향했다. 매수 심리가 고조되고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집을 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송도신도시는 물론이고 연수동 등에 투자 광풍이 불었다.
그러나 고평가된 세종·인천 집값은 경기 침체에 곧장 내리막길을 걸었다. 결국 세종과 인천 연수·남동·서구 등 4곳은 지난달 21일 조정대상지역은 유지하되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됐다. 대전, 대구 역시 지난해 말부터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들 지역에서 가격 하방 압력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8일 발간한 '3분기 지역경제 보고서(골든북)'에서 "최근 주택 가격은 수도권-비수도권, 시·도 간 등락이 상이하게 나타나는 등 지역별로 차별화하는 양상"이라며 "향후 2년간 대부분 지역의 아파트 입주 물량이 최근 3년 평균에 미치지 못하지만, 대구와 인천, 충남은 과거 평균을 크게 상회해 가격 하방 요인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택시장 침체도 향후 2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매매가격 저점은 내년 3월에서 2024년 2월 사이, 전세가격 저점은 2025년 2월로 건정연은 예상했다. 건정연 관계자는 "지속적인 금리 상승에 더해 내년 양도소득세 부과 유예가 종료되고 매물 잠김효과 소멸로 거래가 증가할 경우 집값 하락 폭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전했다.
◆사그라든 분양 완판·청약 불패 열기…미분양 대책 목소리
분양 완판(완전 판매)은 옛말이 됐다. 무순위 청약(줍줍) 미달도 부지기수다.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11월 말 1만4094가구로 바닥을 찍은 뒤 올해 들어 매월 증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3만2722가구로, 전월보다 4.6%(1438가구) 증가했다. 특히 수도권 미분양은 5012가구로 한 달 새 10.7%(483가구) 늘었는데, 인천에서 7월 말 544가구→8월 말 1222가구로 2배 넘게 급증했다. 지방은 같은 기간 2만6755가구에서 2만7710가구로 3.6%(955가구) 증가했다.
시·도별로는 대구(8301가구), 경북(6693가구), 경기(3180가구) 등 순으로 미분양이 많았다. 대구의 경우 지난 2011년 12월(8672가구) 이후 10년 8개월 만에 미분양이 8000가구를 넘어섰다. 일례로 대우건설이 지난해 12월 분양한 '동대구 푸르지오 브리센트'(794가구)는 여전히 물량을 소진 중이다. 앞서 1순위 청약 경쟁률은 0.53대 1에 그쳤다.
이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 8월 대구 중·동·남구, 울산 울주군, 경북 경주시, 전남 광양시, 충남 아산시, 강원 평창군 등 11곳을 분양보증 사전심사 대상인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청약 불패였던 서울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 지난 4일 구로구 오류동 '천왕역 모아엘가 트레뷰'는 총 140가구 중 129가구에 대한 줍줍을 실시했으나 그마저도 101가구가 미달됐다. 이 단지는 8월 말 1순위 청약에서 평균 경쟁률 0.85대 1에 그쳤고, 이후 계약 포기자가 속출했다.
경기가 일정 수준까지 회복되지 않는 한 미분양은 계속 늘어나겠지만, 건설사들이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그 폭이 조절될 가능성도 있다. 동시에 건설 업계에서는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지난달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주택경기 침체 해소 방안 마련'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정부에 매입임대 등록 허용을 앞당기고, 미분양 주택을 공공이 매입할 것을 요구했다.
노경조 기자 felizkj@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