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원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8일(현지시간) 깜짝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3연속 자이언트스텝 결정도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온다. 치솟는 물가에 주요국들의 금리인상 속도가 더욱 빨라지면서 한국은행에 대한 금리인상 압박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CB는 이날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 0.50%에서 1.25%로 0.75%포인트 인상했다. 지난 7월 2011년 이후 11년 만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한 데 이어 이번엔 한층 더 강력한 자이언트스텝까지 밟은 것이다. 이는 유로화 도입 이후 사실상 가장 큰 폭의 금리인상이어서 매우 이례적인 행보다.
2016년 3월부터 6년 이상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유지해온 ECB가 긴축을 강화하는 것은 치솟는 물가를 하루빨리 잡아야 한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상승률이 지난달 9%를 돌파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물가상승률이 너무 높은 수준에 머물고, 예상보다 긴 기간 목표치인 2%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 데 따른 결정으로, 앞으로도 추가적 금리인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유로존에 대한 가스공급을 완전히 중단하겠다고 경고한 만큼 유럽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으나, ECB는 물가가 먼저라고 인식한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파월 Fed 의장도 같은날 물가상승에 맞서기 위한 큰 폭의 금리인상 기조를 재차 확인했다. 그는 워싱턴DC에서 열린 카토 연구소 주최 통화 정책 콘퍼런스에서 "역사는 섣부른 완화 정책에 대해 강력히 경고를 주고 있다"며 "우리가 해왔던 것처럼 지금 단도직입적으로, 강력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파월 의장은 지난달 26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도 "또 한 번 이례적으로 큰 폭의 금리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때문에 시장에선 Fed가 오는 20~21일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지난 6월과 7월에 이어 세 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을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은의 금리인상 속도도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들이 가파르게 금리를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인상에 머뭇거리다가 물가상승세가 확대되고, 원화가치가 더 떨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전날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도 "국내 경기의 하방위험이 커지고 대내외 여건의 높은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지만, 물가가 목표 수준을 크게 상회하는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과 미국(상단 기준)의 기준금리는 연 2.5%로 같은데 Fed가 다시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하면 한미 금리 격차가 0.75%포인트 차이로 역전돼 국내 자금유출 가능성도 있다.
다만 당장 한은이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 분위기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다.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국내 가계부채 부실 위험이 커지고, 경기 둔화까지 겹치면 오히려 우리 경제에 부담이 확대될 수 있어서다.
앞서 이 총재는 지난달 금통위 이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리는 점진적 인상이 여전히 적절하다고 말했고, 전날 이상형 한은 부총재보도 "최근 환율이 상승했지만 경기·물가 상황이 8월 금통위 이후에 큰 변화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8월 금통위에서 밝힌 점진적 금리 인상 원칙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