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민기자
[아시아경제 오규민 기자] “2명 빨리 빨리 타세요. 늦었어”
8일 오전 5시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남구로역. 인력사무소가 밀집한 남구로역 삼거리 300m 전부터 수십대의 승합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마지막 건설현장 인력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평소 600여 명이 대기하던 이 곳에 700여 명의 인파가 모였다. 대부분 60대가 주를 이뤘다. 이들은 “일이 없어 요즘에”라며 건너편 수백명이 모여 있는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 일당 평균 15만원. 미장 등 기술이 있으면 하루에 20만원도 벌 수 있기에 이들은 자신을 태울 승합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없는 첫 명절을 맞이했지만 고물가 영향으로 인력시장도 불황을 맞았다. 일거리를 찾기 어려워진 사람들은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일거리를 구한 사람들은 승합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오전 7시부터 시작되는 건설현장에 미리 가서 6시 20분에 아침 식사를 해야 한다. 6년째 인력시장에 나와 일을 하는 한 일용직 노동자는 “어제(7일)부터 사람이 더 많아졌는데 추석 땐 이 곳도 일을 안 하니 지방에서도 사람이 많이 올라 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본지 기자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길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그는 은색 승합차를 발견하고는 타야 된다며 곧장 가방을 챙겨 차에 올라탔다. 차에 타고 있던 인력 팀장은 “이미 늦었어요. 빨리 타세요”라고 외쳤다.
대부분 노동자들은 일거리가 줄었다고 말했다. 2년 동안 1주일에 3번씩 남구로역을 찾는다는 최모씨(66)는 “가끔 하는데도 요새 들어 더 많이 (일을) 못했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번주 들어 이 곳에서 3번째 아침을 보냈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돈은 14만원이다. 옆에 서있던 친구 오모씨(66)는 “10개월 전부터 했는데 거리두기가 풀렸어도 일거리가 늘지 않았다”라며 “일을 하지 않을 때는 7시나 8시까지도 기다리기 일쑤다”라고 덧붙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임시직 및 일용직 노동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5만2000명, 7만7000명씩 감소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쓰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한 사람도 있다. 위모씨(64)는 “여기 보면 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라며 “7시 넘어 까지 남는 사람은 결국 우리 같은 나이 든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물가가 올라 돈을 벌어도 힘들어 고향에 가지 못한다고 했다. 오전 6시 30분께까지 삼거리에서 대기하던 윤모씨(68)는 “오늘은 아예 공쳤다”라며 돈을 벌어도 물가가 올라 남는 게 없다고 했다. 이에 그는 이번 명절을 동네에 있는 지인들과 보낼 계획이다. 윤씨는 어제 야근까지 하며 19만8000원을 벌었지만 어깨수술 후유증으로 일을 많이 하지 못한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아침에 다시 나온 이유를 묻자 “나이도 있어서 일할 수 있을 때 해야 하고 장기로 할 수 있는 일자리도 찾고 있다”라며 기자의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일자리 없냐고 되묻기도 했다.
인력사무소를 늦게 찾아 발길을 돌린 노동자도 있었다. 오전 6시 20분께 한 노동자가 계단을 뛰어 올라오며 인력사무소 관계자에게 “일 끝났나요”라고 묻자 관계자는 “5시까지 오셔야 해요 삼촌”이라고 답했다. 10년째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원자재값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건설현장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어 “일거리를 찾는 사람의 발길도 조금 줄었다”라고 밝혔다. 반면 한 인력사무소 팀장은 신분증이 만료된 사람 등 일할 수 없는 사람도 대기를 많이 하고 있다며 “편한 일 찾으려는 사람도 많아 대기하는 것뿐이지 일자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