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알려진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 일대에서 피라미드 건설의 미스터리 중 일부를 풀어줄 증거가 나오면서 전세계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나일강에서 피라미드까지 연결된 지류가 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강물을 이용한 석재운반설이 크게 힘을 얻게 됐기 때문인데요.
그동안 인간보다 훨씬 우수한 기술문명을 지닌 외계인이 지었다는 설까지 나왔던 피라미드 건축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집트 당국에서는 외계인축조설이 인종차별주의의 산물로 보고 그동안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왔던 것으로 알려져있죠.
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프랑스 '유럽 환경지구과학 연구교육센터(CEREGE)'의 환경지리학자 하데르 세이샤가 이끄는 국제연구팀은 이집트 북부 기자 피라미드 주변에서 시추한 퇴적층에서 발견된 꽃가루 화석을 통해 나일강 지류의 흔적을 확보한 결과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습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약 7km 떨어진 나일강과 기자 피라미드를 연결하는 나일강 지류가 있었던 것이 확인됐으며 이를 통해 석재를 운반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해당 지류를 기자 피라미드 중 가장 큰 피라미드인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이름을 따서 '쿠푸 지류'라 붙였다고 하네요.
연구팀은 쿠푸 지류로 추정되는 곳을 따라 여러 해에 걸쳐 5곳을 시추해 수천년에 걸친 퇴적층 시료를 확보했습니다. 이어 시료의 꽃가루 알갱이 화석을 분석해 양치식물과 종려나무 등 61종의 식물을 확인했는데요. 이 식물들을 통해 약 8000년에 걸친 주변 환경 변화를 파악한 결과 부들이나 파피루스 등 물가에 서식하는 식물들이 이 쿠푸 지류 일대에 서식했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연구팀에 따르면 쿠푸왕 피라미드와 카프레, 멘카우레 피라미드가 건설된 기원전 2686∼2160년 당시 해당 지류가 약 40%의 수위를 유지해 물자 수송에 충분하면서도 범람 위험이 없어 피라미드 건설에 적합했던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1350년 무렵부터는 수위가 수백년에 걸쳐 계속 낮아지면서 물자를 수송할 수 없게 돼 피라미드 건설도 끝나게 됐고,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한 기원전 332년 무렵에는 지류가 바짝 마르면서 지금처럼 피라미드 묘역으로 전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동안 피라미드 건축에 들어간 대형 석재들이 어떻게 운반됐는지는 미스터리였습니다. 특히 기자 피라미드 중 가장 규모가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 147m에 밑변 길이 230m로 평균 2t이 넘는 석회암과 화강암 등 석재 약 230만 개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축조기술 등에 대한 의구심이 커져왔죠.
앞서 학계에선 나일강이 피라미드 물자 운반에 이용됐고 건설 현장까지 수로를 팠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 제기돼 왔으나 이를 입증하진 못하고 있었습니다. 피라미드의 석재가 된 화강암, 석회암 등의 채석장은 나일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었지만, 피라미드 건설현장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강에서 석재를 어떻게 운반하는지에 관심이 집중돼왔는데요.
이번 연구로 석재 운반에 대한 미스터리는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엄청난 무게의 석재들을 어떻게 쌓아올렸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현대 중장비를 이용해도 어려운 피라미드 건설에 대해 외계인이 지은 것이 아니냐는 외계인축조설까지 나돌았죠. 1994년에 개봉한 영화 '스타게이트'처럼 피라미드를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설을 기반으로 한 SF 영화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유명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도 피라미드의 외계인축조설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CNN에 따르면 지난 2020년 8월, 자신의 트위터에 "피라미드는 외계인이 만든 작품"이라고 올리면서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당시 이집트 정부가 머스크의 트윗에 크게 반발하면서 국제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집트 라니아 알마샤트 국제협력부 장관은 머스크에게 "피라미드가 어떻게 지어졌는지와 피라미드를 만든 사람들의 무덤을 확인하러 이집트를 방문해야한다"며 그를 이집트로 초청하기까지 했는데요.
이집트 정부가 이렇게 크게 반발한 이유는 피라미드의 외계인 축조설이 19세기 인종차별주의에서 비롯됐다는 해석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피라미드 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20세기 초반, 이집트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영국에서는 피라미드와 같은 고도의 축조기술이 들어간 건축물을 아프리카인들이 세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죠.
당시 백인우월주의에 빠져있던 서구 학자들도 피라미드는 지능이 낮은 아프리카인들이 세운 것이 아닌, 외계의 존재가 세운 것이라고 믿으면서 외계인축조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번 쿠푸 지류 발견이 이런 인종차별주의를 해소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봅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