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경험하고 마음으로 그려낸 제주의 바람·파도·구름

강요배 화백 4년만의 개인전 ‘첫눈에’
한라산 열 번 오른 뒤 그린 '산상'·선인의 자유로움 닮은 구름 '비천' 등 근작 18점 전시

비천(飛天) Flying in the Sky,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227x182cm. 사진제공 = 학고재갤러리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그림은 2차원 평면이지만 이를 만드는 과정은 2차원 이상의 입체적 경험을 필요로 한다." 강요배(70) 화백이 4년 만에 근작 열여덟 점을 통해 관객을 만난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에서 진행 중인 강요배 개인전은 풍경화로 구성됐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작품은 강 화백이 1998년 금강산 방문 당시 눈에 담은 풍경을 담은 내금강 ‘중향성(衆香城)’이다. 전경은 흡사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떠올리게 한다. 정선이 사실적 묘사를 위해 봉우리 하나하나를 그려낸 것과 달리 강 화백은 마음속에 남은 풍경을 3m가 넘는 대형 화폭에 구현했다.

산상(山上) On the Mountain,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97x667cm. 사진제공 = 학고재갤러리

작가는 제주도의 자연과 날씨 속에서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즉 칠정(七情)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림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주된 심상은 노여움이었다고 고백한 강 화백은 "노여운 감정은 제주의 강한 바람 또는 파도로 나타나고, 이때 즐거움과 슬픔의 정서도 함께 환기된다"고 설명했다.

열 번 가까이 한라산 정상에 오른 작가는 당시 자신이 바라본 풍경을 마음속에서 되뇌며 ‘산상(2022)’을 완성했다. 실제 등산객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부감(俯瞰)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백록담 분화구를 바라보며 작가가 익혔을 지형에 대한 이해가 회화적 심상을 통해 엿보인다.

장미의 아침놀 Morning Glow of Typhoon Jangmi,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81.7x259.5cm. 사진제공 = 학고재갤러리

언뜻 보면 노을을 그린 것 같은 ‘장미의 아침놀(2021)’은 태풍이 오기 전 새벽하늘이 머금은 폭풍전야의 고요를 강렬한 색감으로 담아냈다. ‘장밋빛 하늘(2021)’ 역시 새벽의 하늘을 그렸지만 거대한 무지개를 품고 있어 그 정서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현실에 기반하면서도 추상적 풍경을 화폭에 담아낸 강 화백은 사진을 보고 그리는 일은 절대 지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작가가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하는 순간 그 이미지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시각적 재현이 아닌 작가의 마음과 표현을 거쳐 그려내는 작업을 통해 그는 자신만의 관점에서 불필요한 것은 제하고 오직 필요한 것만 남기는 구도를 이어가고 있다.

풍설매(風雪梅) Plum Blossom In Snowstorm,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30x162cm. 사진제공 = 학고재갤러리

거친 눈바람 속 피어난 홍매를 품은 ‘풍설매(風雪梅)(2022)’는 바람에 날리는 흰 눈과 이에 맞선 붉은 매화의 구성을 통해 우아한 정서를 자아낸다. ‘비천(飛天)(2022)’ 속 푸른 하늘 사이 자유롭게 날리는 구름의 모습은 흡사 하늘에 떠 있다는 선인(仙人)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는 듯 가볍게 날린다. 김정복 미술평론가는 이 작품을 두고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상서로운 기운의 문양처럼 기류의 스침이 날렵하다"고 분석했다. 작가 또한 이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흡족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종심(從心·70)에 이른 작가는 앞으로도 핵심만을 드러내는 추상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처럼, 제주의 하늘과 바다, 땅과 바람이 그의 눈과 심상을 거쳐 구상이지만 추상같은 독특한 작품으로 탄생됐다. 전시는 9월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에서 진행된다.

구름 속에 In the Clouds,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227.5x181.7cm. 사진제공 = 학고재갤러리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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