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어느 대형병원 간호사의 죽음

[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국내를 대표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십수 년 차 중견 간호사가 최근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러나 이 간호사는 수술을 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가야만 했다. 하필 수술이 가능한 의료진이 학회 참석 등으로 자리를 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소속된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이송된 이 간호사는 옮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일주일도 안된 지난달 30일 결국 사망했다. 이 사실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오면서 알려졌다. 병원 구성원들은 들끓었다. 직원조차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병원에 대한 실망감, 앞으로 환자들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자괴감을 비롯해 의료시스템에 대한 문제 지적까지 여러 의견이 뒤엉켰다.

무엇보다 이 간호사가 몸담고 있던 병원은 하루 1만명 넘는 외래환자와 연 10만명 넘는 응급환자가 찾는 자타공인 국내 1등 병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이 병원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응급환자가 몰려 응급실이 항상 포화상태다. 그럼에도 수술할 의료진이 없어 직원이 수술을 받지 못했다. 촉각을 다투는 응급환자의 골든타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누구보다 병원과 가까운 직원조차 이런데 하물며 일반 응급환자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말까지 나온다. 국내를 대표한다는 병원조차 이렇다면 지금의 응급의료 체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간호사들의 ‘번아웃’ 문제도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대형병원 병동 간호사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이후 2년 넘게 초긴장 속에서 환자를 돌봐왔다. 병원 자체의 강력한 거리두기 지침이 풀리기 전까지 여행이나 외식은커녕 제대로 외출조차 못하며 병원을 지켰다. 이런 가운데 9월 인증평가를 앞두고 각급 병원 간호사들이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속출한다. 이러다 또 어디서 누가 쓰러질지 모른다. 누구보다 병원과 가까웠던 베테랑 간호사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이 간호사의 장례는 수술과 치료를 받은 병원이 아닌 자신이 몸담았던 병원에서 치러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관주 아시아경제 바이오헬스부 기자.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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