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완기자
[아시아경제 김정완 기자] 작곡가 겸 프로듀서 유희열의 '표절 논란'으로 인해 촉발된 가요계 표절 의혹이 이적, 이무진 등으로 번지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표절은 원작자가 고소해야 성립되는 친고죄이기 때문에 제3자가 자칫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오는 한편, 이번 논란을 계기로 레퍼런스(참조) 삼아 곡을 제작하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는 등 정도가 심해지는 음악계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따른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22일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시청자들과 작별했다. 앞서 유희열은 지난달 모 브랜드와 협동 작업한 '생활음악' 프로젝트를 통해 발표한 곡 '아주 사적인 밤'에 대한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해당 곡이 일본 영화음악 거장인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곡 '아쿠아(Aqua)'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따른 것이다.
이에 유희열은 곡의 메인 테마가 충분히 유사하다는데 동의한다면서 사과했다. 그는 "사카모토 류이치는 긴 시간 가장 영향받고 존경하는 뮤지션이기에 무의식중에 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됐다"며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18일 밝혔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두 곡의 유사성을 인정하면서도 유희열에 대해 "법적 조치가 필요한 수준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냈지만 논란은 지속됐다. 이후 '생활음악' 프로젝트의 또 다른 곡인 '내가 켜지는 시간', 성시경이 부른 '해피 버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 MBC '무한도전' 출연 당시 공개한 '플리스 돈트 고 마이 걸(Please Don't Go My Girl)(Feat. 김조한)' 등 유희열이 작곡한 다른 노래들에 대해 잇따라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유희열은 '아주 사적인 밤' 외에 다른 곡들에 대해서는 "지금 제기되는 표절 의혹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올라오는 상당수의 의혹은 각자의 견해이고 해석일 순 있으나 저로서는 받아들이기가 힘든 부분들"이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다만 이런 논란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제 자신을 더 엄격히 살피겠다"고 강조했다.
유희열에 의해 촉발된 가요계 표절 의혹은 가수 이적으로 향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지난 2013년 발매된 앨범의 타이틀곡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브라질 가수의 곡 '루비 그레나(Rubi Grena)'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번졌다. 이와 관련 이적의 소속사 뮤직팜엔터테인먼트는 "표절이 아니다"라며 "이 의혹에 대해선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표절 논란은 가수 이무진에게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5월 발매된 이무진의 자작곡 '신호등'이 지난 2015년 나온 일본 가수 세카이노 오와리의 곡 '드래곤 나이트'와 유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이무진 소속사 빅플래닛메이드엔터테인먼트는 20일 입장문을 내고 "'신호등'은 아티스트 본인이 직접 겪은 감정을 토대로 만들어진 창작물"이라며 "전체적인 곡 구성과 멜로디, 코드 진행 등을 분석한 결과 유사 의혹이 제기된 곡과는 무관함을 알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희열을 시작으로 잇따르고 있는 국내 가요계의 표절 논란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팽팽히 갈린다. 록 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은 지난 5일 방송된 MBC '100분 토론'에서 "8마디가 흐트러짐 없이 똑같다"며 "표절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내 귀에 비슷하게 들린다고, 내 기분이 나쁘다고 표절이 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코드 진행 일부가 겹친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할 수 없다"며 "원곡자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면 모를까, 찰나의 음표 진행 몇 개가 겹치는 것도 표절이 되지 않는다. 높낮이와 속도를 조정해서 비슷하게 들리는 곳 또한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정도가 지나친 수준은 이번 논란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특정 아티스트와 곡에서 영감을 받아 음악을 만드는 방식도 문제될 것 없다"면서도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생각하면 스스로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것에 관대해지면 결국 이런 문제들이 터진다"며 "'레퍼런스 하더라도 이렇게 하면 나중에 문제된다'의 예로 평가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지 왜 기준을 낮추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가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표절은 원작자가 고소해야 성립되는 친고죄로, 당사자 간 법정 공방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이상 법적으로 표절이라고 할 수 없다. 해외에선 표절 시비가 소송으로 이어지는 일이 종종 발생해 판정을 받는 사례가 나오지만, 국내에선 당사자 간 협의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지난 2013년 미국에선 로빈 시크의 곡 '블러드 라인'이 마빈 게이의 곡을 표절했다는 판결이 내려져 60억 원가량을 배상하게 된 사례가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중음악 관련 구체적인 법안이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표절 판단 기준인 '당사자간 소송'으로는 단순히 곡의 구성이나 멜로디가 비슷하다는 측면에서 표절이라고 속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일권 대중음악평론가는 "무엇보다 대중음악 표절에 관한 강력한 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정완 기자 kjw106@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