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민기자
[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1년 전 결혼을 앞두고 집을 마련하기 위해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로 5억원을 빌린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8월 말 주담대 금리 재산정을 앞두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렸기 때문이다. 신용대출 이자가 1년 사이 두차례 오르면서 한 달 165만원이었던 대출이자는 180만원까지 이미 올랐다. 여기에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담대 금리까지 급등하면 월급의 대부분을 대출이자를 갚는데 써야한다. A씨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마이너스인 주식을 팔아서라도 대출 일부를 갚아야 할지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고 있는 중"이라며 "대출이자 부담은 커지는데 집값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어 사실상 패닉 상태"라고 말했다.
시중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 재산에 대출까지 끌어모아 내 집을 마련한 20, 30대 청년층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장 타격을 받는 것은 1년 변동금리 주담대에 가입해 재산정이 임박한 청년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다. 이들은 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 기준 약 13만명으로 추산된다.
◆1년 동안 2%포인트 뛰었는데 연말에는 7%까지?…커지는 2030 한숨 = 15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2030 주담대 금리형태별 신규승인 현황’에 따르면 4대 은행 기준 지난해 8~12월 변동금리 신규승인 건수는 13만8660건으로 집계된다. 쉽게 말해, 1년이 지나 다음달부터 연말까지 주담대 금리를 재산정받는 규모인 셈이다. 이 기간 주담대를 받은 청년들은 총 18만975명으로, 변동금리 비중이 76.6%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끌어모은 ‘영끌족’이다.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금리 급등에 따른 타격도 더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7월부터 실수요자에 대한 대출규제를 일부 풀면서 이 기간 청년들이 주담대를 더 많이 받았다. 당시 정부는 무주택 실수요자가 받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우대폭을 10%포인트 높였고, 대출을 통해 살 수 있는 주택가격 기준 역시 투기과열지구의 경우 6억원에서 9억원 이하로 상향, 최대 4억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대책이 실행되기 전 3만4000건 수준인 주담대 신규승인 건수는 이후 8월 4만2586건까지 늘었다.
하지만 올 상반기 한은이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이들은 금리인상의 압박을 고스란히 받게 됐다. 지난해 7월 0.5%였던 기준금리는 그해 8월과 11월, 올해 1·4·5월에 이어 이달까지 총 6번 인상되며 2.25%까지 오른 상태다. 그 사이 주담대 금리는 2.81%에서 5월 기준 3.9%까지 올랐는데, 이번 한은의 빅스텝(0.5%포인트 인상)으로 추가 상향될 전망이다. 현재 4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는 3.74%~5.68%에 이른다. 기준금리가 0.5%였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금리 상단이 2%포인트 넘게 뛴 것이다.
문제는 금리 인상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앞으로 금리를 한 두번 올리더라도 긴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연말 기준금리) 2.75%~3%를 시장에서 예측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대출금리에 적용하면 6%에 육박하는 주담대 금리가 올해 말 7%를 돌파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08년 12월 기준금리가 3%였을 당시 주담대는 6.81%까지 치솟았다.
◆청년 영끌족 몰린 서울 외곽부터 집값 ‘뚝뚝’…금리인상에 집값하락까지 이중고=이런 와중에 2030 영끌족의 매수 비중이 높은 서울 외곽부터 집값 하락 움직임을 보이며 한숨은 더 깊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이달 둘째주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7주 연속 하락했다. 전주 대비 0.04% 하락하며 하락폭도 커지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이 -0.04%를 기록한 것은 2년2개월여 만이다. 특히 강남권에 비해 강북권의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강남 11개구는 전주 대비 0.02% 하락한 반면, 강북 14개구는 0.06%가 떨어졌다. 특히 노원구·도봉구가 전주 대비 0.1% 하락해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고, 강북구도 0.09%가 떨어졌다.
집값 하락은 기준금리가 더 오를 것이란 우려에 매수에 나서는 이들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매물은 쌓이는데 매수심리는 위축되면서 거래량은 사실상 실종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한동안 집값이 제자리에 머물거나 떨어질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에서 높은 이자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대출로 집을 사는 의사결정은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며 "향후 5~8% 미만의 가계대출 금리를 지불하는 차주 비중이 전체의 절반을 넘기게 되면 가계경제나 부동산 시장도 상당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금리인상, 그리고 집값 하락안정이 아닌 폭락은 국가경제에도 위험한 신호라고 지적한다. 이은형 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땐 집값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제가 휘청이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이런 사태가 안 오고 시장이 연착륙하도록 정부가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역할이 본래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박춘성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올 초 보고서를 통해 "금리가 인상될 때 차주 스스로 부채를 일부 상환해 이자 비용을 낮추려는 노력이 있겠지만, 해당 시점의 소비여력을 감소시킬 수밖에 없다"이라며 "실물 부문이 지나치게 부진해지지 않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