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희인턴기자
[아시아경제 이서희 인턴기자] 서울 을지로에서 순댓국집을 운영하는 박재란씨(52)는 최근 손님에게 제공하는 밑반찬 가짓수를 줄였다. 기존에 제공되던 반찬은 애호박볶음, 콩조림, 진미채, 계란말이, 오징어볶음, 겉절이 등 총 여섯 가지였는데, 애호박볶음을 빼고 다섯 가지로 줄인 것이다. 또 모든 밑반찬의 양을 원래 제공되던 양의 절반가량으로 줄이고, 부족한 손님에 한해 추가 지급하기로 운영 방식을 바꿨다.
박씨는 “식자재 가격을 고려하면 음식 가격을 인상하는 게 맞지만, 손님들의 반발을 고려해 나름대로 현실적인 방안을 찾은 것”이라면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식재료 값이 오르면서 기본 반찬의 가짓수나 양을 줄이는 식당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가격을 그대로 두는 대신 제품의 크기나 수량을 줄여 이윤을 보전하는 일명 ‘슈링크플레이션’(shrink+inflation) 현상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사실상 간접적인 가격 인상에 해당하지만, 직접적인 가격 인상보다 소비자가 눈치 채기 어렵고 소비자 저항이 덜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슈링크플레이션엔 외식 업계 종사자들의 오랜 고민이 녹아 있다. 모든 소비자 물가가 크게 오르는 상황에서, 식당마저 음식 값을 올리면 팍팍한 손님들의 주머니 사정이 더 어려워지고, 최악의 경우엔 손님이 끊길 수도 있다는 업주들의 공포가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음식 가격을 인상하는 것보단 음식 양을 줄임으로써 식자재 가격을 절약하는 게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서울 명동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이기환(43ㆍ가명)씨는 “우리도 삼겹살 1인분(160g) 가격을 2000원 올리는 대신 고기 1인분 중량을 줄이기로 최근 결정했다”면서 “손님들이 가격 인상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음식 중량을 줄이는 일에는 비교적 둔감하게 반응하므로 우리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소비자 사이에선 이러한 슈링크플레이션 흐름이 손님을 대상으로 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삼겹살처럼 정확한 중량을 메뉴판에 표기해야 하는 음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식당이 음식 중량을 소비자에게 고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업주가 몰래 음식 양을 줄인다고 해도 소비자 입장에선 마땅히 알 방법도, 대처할 방법도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소비자의 반응은 엇갈린다. 서울 중구에 사는 직장인 문승진씨(29)는 “얼마 전 대학생 때부터 다니던 단골 식당을 찾았는데, 제육볶음 양이 예전 같지 않더라”면서 “속상하긴 해도 사장님도 장사하려면 어쩔 수 없으니 그러려니 했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소재 대학생 조윤아씨(23)는 “사장님들 마음도 이해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어쩐지 속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차라리 음식 가격을 올리고 소비자에게 이를 정직하게 고지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서희 인턴기자 daw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