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완기자
[아시아경제 김정완 기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이준석 대표의 징계와 관련해 논의하는 모습이 방송사 카메라에 노출됐다. 이들은 '전당대회', '당헌·당규', '직무대행' 등 발언을 하며, 이 대표를 둘러싼 주요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다. 다만 언론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이런 사례가 처음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종의 언론 대응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MBC가 12일 공개한 영상에는 유상범·최형두·박대수·이종성 의원 등이 마이크 앞에 모여 앉아 이 대표의 윤리위원회 징계를 놓고 논의하는 장면이 담겼다.
최 의원이 "중진들 중에는 자기 유불리에 따라서 '전당대회를 하자' 이런 해석이 나오는데"라고 운을 떼자, 유 의원은 "그건 우리가 얘기할 게 아니라니까"라고 말했다. 최 의원이 "당헌·당규에 따라서 할 경우엔 어떻게 해석한다는 건가"라고 묻자 유 의원은 "그냥 직무대행으로 가는 거다"라고 했다.
최 의원이 다시 "직무대행으로 가는 것은 언제까지로 보고 있나. 6개월까지?"라고 묻자, 유 의원은 "아니 그 사이에 기소가 나오면 징계를 다시 해야 한다"며 "수사 결과에서 '성 상납이 있었다'가 인정되면 어쩔 건가"라고 말했다. 이에 최 의원이 "그 얘기는 아닐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고 하자, 유 의원은 "아닐 경우도 생각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조사한 것을 흘러보면"이라며 이 대표의 성 상납 의혹이 인정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한 언급을 했다.
최 의원은 "(성 상납에 대해) 그게 가벌성이 있어야지.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야지"라고 물었고, 유 의원은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그거 다 거짓말했다. '나 (성 상납) 안 했다'고. 그게 더 중요한 거다"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또 "그다음에 또 있다. 비상대책위원회로도 갈 수 있다. 조금 이따가 최고위원들이 다 사퇴해버리면 비대위로 바뀌기도 한다"며 "그러니까 지금 당장 여기(초선회의)에서 무리하게 해서 잘못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의원 옆에 앉아 있던 박 의원이 "전당대회·조기 전당대회 이런 얘기 안 나오게끔"이라고 말하던 순간, 최 의원은 마이크가 켜진 것을 눈치챈 듯 마이크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약 1분20초간 이어지던 이들의 대화는 현장에서 철수 전이던 방송사 카메라를 통해 영상으로 포착됐다.
유상범 의원실은 이 같은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이 대표의 추가 징계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해석이 언론을 통해 제기되자 입장을 내고 "동료 의원들에게 향후 수사 결과에 따른 당헌·당규의 해석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추가 징계 가능성을 언급하기 위함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또한 "이 자리는 초선 의총 시작 전 운영위원들이 사전 논의를 하는 자리였고, 이미 언론과 비공개로 합의했기 때문에 모든 취재단이 밖으로 나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언론이 합의에 반해 촬영한 영상을 보도한 것은 국회의원과 기자 간의 신뢰관계를 매우 심각히 훼손하는 행위로 거듭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 "죄 없는 사람 여럿 잡을 거 같다",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해야"
정치권에서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른 채 대화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2020년 9월21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당시 검사 출신 야당 의원을 비난해 국민의힘과 설전을 벌인 바 있다.
추 전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전체회의 도중 정회가 선포된 후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많이 불편하시죠"라고 묻자 "어이가 없다. 저 사람은 검사 안하고 국회의원 하기를 참 잘했다"면서 "죄 없는 사람을 여럿 잡을 거 같다"고 답했다.
이들의 사적인 대화는 마이크를 통해 그대로 중계됐다. 이에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은 해당 발언이 법사위 회의에 자리했던 검사 출신 김도읍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 즉각 반발에 나섰다. 당시 유상범 의원은 "질의한 국회의원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마이크 켜진 상태에서 저렇게 말하는 것이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며 추 장관의 발언을 지적했다.
이보다 더 앞선 지난 2019년 5월10일에도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나눈 언행으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 출범 6주년 기념을 겸해 민생 대책에 대한 당·정·청 회의가 열린 이날 자리에는 이인영 전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함께했다.
회의 시작에 앞서 이 전 원내대표가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해야"라고 운을 떼자, 김 전 정책 실장은 "그건 해주세요. 진짜 저도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 정부가"라고 답했다.
이에 이 전 원내대표는 "단적으로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그 한 달 없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해"라고 말했고, 김 전 정책실장은 "지금 버스 사태가 벌어진 것도"라고 했다. 이 전 원내대표는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들을 하고"라고 재차 강조했다.
대화가 공개되자 "공무원에 대한 '갑질 뉘앙스'가 물씬 느껴진다" 등 반응이 나왔다. 다만 관료사회의 복지부동을 지적하는 듯한 두 사람의 대화에 대해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고의로 한 것 아니냐는 견해가 따르기도 했다.
김정완 기자 kjw106@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