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국제 ESG공시' 표준화…기업들 '순차도입, 유예기간 적용'

기업 중심 아닌 투자자 중심 공시
경영→환경·사회 영향 자세히 밝혀야

각국 당국이 사정에 맞게 조율 가능
기업들 "中企 도입속도 조절" 요구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가운데)이 30일 서울 대한상의회관에서 개최한 제2차 대한상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아젠다그룹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산업계가 연말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지속가능성 공시' 국내 도입 과정에서 기업 규모별로 순차도입하고 유예기간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소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로 알려진 이 체계와 관련해 영국의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이 지난해 말 관련 조직을 설립한 뒤 최근 초안을 발표한 데 대한 반응을 내놓은 것이다. 최근 초안이 발표된 지속가능성 공시는 연말 최종안 확정을 앞두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30일 오전 서울 중구회관에서 '2차 ESG 아젠다그룹 회의'를 열고 기업들과 함께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회의엔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을 비롯해 이형희 SK SV(사회적가치)위원회 위원장, 김광일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장, 김의형 한국회계기준원 원장, 김동수 김앤장 ESG경영연구소 소장, 전규안 KSSB 준비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정인희 삼성전자 상무와 현대차, LG, 롯데(롯데지주), , 한화, 두산, CJ, GS칼텍스, KT,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신한지주) 등 산업·금융계 임원들도 참여했다.

대한상의가 국내 20대 그룹과 주요은행 17개사에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ISSB 공시기준 적용 시기에 대해 73%가 "기업 부담 가중을 우려해 충분한 유예기간을 갖고 점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중견·중소기업에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견·중소기업들 중 상당수가 지금도 IR(기업공개) 조직이 부족해 한국거래소에 내는 기본적인 공시 오류를 내는 데다 각종 ESG 공시 부담을 겪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철민 대한상의 ESG경영실 실장은 "ESG공시가 세계적으로 표준화되는 것인데, 기업 규모별로 신중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예를 들어 자산 총액 2조원을 기준으로 단계적으로 적용하자는 게 중론"이라고 전했다. '자산총액 2조원'은 코스피(유가증권시장) 기업 지배구조(ESG의 'G') 의무 공시 대상 기준이다. ISSB의 공시의 경우 각국 사정에 맞게 자율 적용하도록 허용되는 만큼 당국이 기업 의견을 수용할 경우 규모별 순차적용과 유예 기간 설정 등이 가능해진다.

회의가 열린 서울 중구 상의회관 전경.(사진제공=대한상공회의소)

발제자들은 한국판 전담기구인 'KSSB'(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를 만드는 등 IFRS재단과의 협업 체계 구축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규안 부위원장은 "국내에 전담기구 설립을 해 IFRS 재단과의 협력채널을 강화하고 ISSB 기준 제정 과정에서 국내 경영환경의 특수성을 반영한 의견을 적극 개진해야 한다"며 "한국회계기준원 내 KSSB를 설립하고 자본시장법으로 설립근거 규정과 관련내용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도 ISSB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제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속가능성 공시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법적 구속력을 갖춘 만큼 기업들이 사업장별 ESG 데이터 관리 체계를 조속히 갖춰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동수 소장은 "지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기후변화 공시기준과 ISSB 기준이 연이어 공개됐고, 지난달 말엔 EU 지속가능정보공시(CSRD) 기준까지 나오는 등 미국과 유럽의 ESG 정보공시기준과 회계기준 관련 법적 요건이 동시에 제시됐다"며 "앞으로의 ESG공시 예상쟁점으로 어떤 기준을 사용할지, 정보공개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정보공시 품질검증기준을 누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인지 등이 떠오를 것"이라고 했다. 이어 "결론이 어떻게 나든 기업은 사업장별 ESG 데이터 관리체계 구축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덧붙였다.

공시 주체와 내용이 '기업' 중심에서 '투자자' 중심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업은 경영 불확실성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게 됐다. 윤 실장은 "ISSB의 지속가능성 공시 표준이 보급되면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환경과 사회에 기업이 미칠 영향을 공시하는 방향으로 변할 것"이라며 "기업 중심이 아니라 투자자 중심으로 공시해야 할 의무가 기업에 주어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IFRS재단은 지난해 말 ISSB 설립 후 해당 공시 기준을 제정해 지난 3월31일 초안을 발표했다. 오는 7월14일까지 의견을 받은 뒤 연말에 최종안을 발표할 전망이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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