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김병찬에 '헤어지려는 여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나' [서초동 법썰]

'스토킹 살해범' 김병찬 최후변론

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김병찬 /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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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헤어지려는 여자는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했나요?"(판사)"그건 아닙니다."(피고인 김병찬)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층의 한 법정에서 '스토킹 살해범' 김병찬(36·남)의 마지막 변론이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정진아) 심리로 진행됐다.

그는 지난해 11월19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 주차장에서 전 여자친구이던 A씨(당시 32세)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A씨는 스마트워치로 긴급구조 요청을 보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 김병찬은 지난해 6월 명확한 이별 통보를 받고도 스토킹과 무단 침입, 감금·협박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심인 배예선 판사가 물었다. "CCTV를 보면, (흉기에) 여러 번 찔린 피해자가 이미 주저앉아 쓰러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범행 장소에서 나오려다가 (돌아가) 또다시 찔렀습니다. 피해자를 확실히 죽이려고 한 것인가요?" 김병찬은 "기억이 없다"며 "저는 오히려 (피해자가) 살아있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살아있길 바랐다면, 도주 중이나 나중에라도 왜 구조요청 등을 하지 않았나요?" 배 판사가 질문했다. 대구로 도주했던 김병찬은 "TV 뉴스를 보고 (사망 사실을) 알아서 그때부턴 계속 아무것도 안 하고 모텔에 처박혀 있었습니다"고 답했다.

배 판사는 "피고인의 동작이나 일련의 과정을 볼 때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이 느껴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김병찬은 '마지막으로 피해자의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눈물을 흘리며 벌떡 일어나더니 유족들을 향해 뒤돌아 무릎을 꿇고 "정말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김병찬의 모습에 A씨의 유족들이 방청석에서 울부짖었다. A씨의 부친은 발언권을 얻어 "조금이나마 저희 딸을 사랑했다면, 그렇게 도주할 것까지야 있었겠느냐 하는 마음이 들었다"라며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고 헤어지기 싫었다면, 사람을 죽여놓고 경찰에 와서 자수하든지 (중략) 용납이 안 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부친은 "다시 돌아가 '확인사살'을 한 내용 자체는 오늘 처음 들었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피고인은) 자기가 살려고 하는 욕심밖에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검사는 "이 사건 범행은 계획적 범행이고 수법이 잔혹하다"며 "범행 후 수사망을 피하고자 주도면밀하게 도주 방법을 연구한 점 등을 고려하면 계획살인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김병찬은 범행 수일 전 휴대전화로 다양한 종류의 흉기와, 미끄럼 방지 테이프, 실전무술 등 범행과 연관된 단어를 47회 검색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사는 무기징역을 구형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명령 20년 등도 함께 요청했다.

김병찬은 특수협박 및 감금 등 일부 범행을 부인했다. 스토킹으로 고통을 겪던 A씨의 생전 진술에 대해선 "피해자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살해 부분은 계획적 범행이 아닌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당일 흉기를 들고 찾아간 이유는 "피해자가 죽음에 대해 두려움 많이 느껴서 (관계 회복에) 응하리라 생각했다"고 했다.

변호인은 "큰 고통을 받는 유가족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면서 김병찬의 선처를 호소했다. 전자발찌 부착명령에 대해선 "신체의 자유 및 사생활의 자유를 중대히 제한하므로, 재범의 위험성을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며 기각을 구했다. 선고공판은 내달 16일이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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