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기기자
[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 최근 노후 주택이 위치한 원도심 주변으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활성화되자 길거리에 남은 수많은 고양이들의 생존권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폐허가 된 주택가의 길고양이들은 쓰레기들로 인해 위험에 처하거나, 먹이를 구하지 못해 아사할 위기에 놓여있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재건축·재개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대선에서 주택 공급 확대와 규제완화 등을 통해 임기 5년간 총 250만호 이상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47만호(수도권 30만5천호), 공공택지 개발을 통해 142만호(수도권 74만호), 도심·역세권 복합개발로 20만호(수도권 13만호), 국공유지 및 차량기지 복합개발로 18만호(수도권 14만호), 소규모 정비사업으로 10만호(수도권 6만5천호), 매입약정 민간개발 등 기타 방법으로 13만호(수도권 12만호)를 각각 공급한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오세훈표 재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오 시장 취임 이후 학교용지 확보 등 이견으로 3년 이상 육환경평가 심의가 지연됐던 잠실5단지와 건축 심의 단계에 묶여있던 방배 신동아 등 6개 재건축 단지의 건축설계 안이 통과됐다. 또 여의도 지구단위계획도 수립 막바지에 다다랐으며 목동, 압구정 등 주요 재건축 정상화도 진행 중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주거난 해결이 주요 과제가 되자 정치권은 주택 공급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낡은 도심이 재개발되며 인간들은 보다 나은 주거 환경을 갖게 됐지만, 문제는 철거가 예정된 주택가에 남은 길고양이들이다. 인간은 재건축·재개발이 확정되면 주거지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지만, 이주 개념이 없는 고양이들은 인간이 떠나 폐허가 된 곳에 남아 생존 위협을 받는 처지가 된다. 건물 철거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길고양이들이 굉음에 시달리거나 유리, 콘트리트, 벽돌 등의 건물 잔해에 깔려 죽음을 맞는다.
아파트 단지 등 주택가에 남은 고양이들은 아사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주변이 폐허가 돼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렵게 된 데다 근처 주민들이 주는 사료 등에 익숙해져 먹이 활동을 못하는 고양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재건축·재개발로 터전을 잃은 고양이들이 본격적인 사회 문제로 떠오른 건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주민들이 고양이들의 이주 문제를 제기하면서다. 2017년 둔촌주공아파트는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은 후 국내 최대 규모의 재건축을 앞두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당시 거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길고양이의 이주를 고민하는 움직임이 생겼고, 이들을 주축으로 '둔촌냥이' 모임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서울 강동구와 '길고양이 생태적 이주를 위한 사전 연구모임'을 여는 등 길고양이 생존을 고민했다. 함께 머리를 맞댔던 정재은 영화감독은 지난달 개봉된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통해 총 250여마리 달하는 고양이들의 이주 프로젝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향후 많은 재개발·재건축 추진이 예상되면서 길고양이들의 안전한 이주를 위해 '둔촌냥이'와 같은 민간단체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전문가는 법적 제도 마련 이전 지방자치단체·시행사·재건축 조합이 협의해 당장 위협에 처한 길고양이들의 생존권 문제를 다루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지금도 전국 1만 곳 이상에서 재건축 및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어 길고양이들이 죽음에 내몰린 상황"이라며 "환경영향평가를 하면서 나무 한 그루를 옮기는 것도 신경쓰지만 정작 살아 움직이는 고양이에 대한 대책은 없고 이에 대한 지자체와 시공사, 재건축 조합의 문제 의식이 낮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대표는 "법적 제도 마련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지자체가 나서서 예산 지원을 하는 등 주거정비지역 내 길고양이 보호 문제를 다뤄야 한다"며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도 중요하지만 정부도 지자체 일부에 있는 길고양이 안전 조례를 확대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