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가 장난입니까' 끊이지 않는 '공직자 자녀 논문' 의혹, 대학원생들 화났다

자녀 이름 논문 공저자로 올리는 편법 의혹
어제오늘 일 아냐…서울대도 부정 무더기 적발
"논문이 자녀 출세용이냐" 대학원생들 분통
연구자 사기 저하·윤리 훼손 우려 커져

일부 대학원생들은 교수가 자신이나 지인의 자녀를 논문 공저자 이름으로 올리는 부정 행위가 만연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종일 일하고 실험해도 공저자에 이름 석자 올리기 힘든데, 학부생 이름이 올라가는 걸 보면 회의감만 드네요. 연구가 무슨 장난입니까."

30대 대학원생 김모씨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가 편입 전형 '스펙 쌓기'의 일환으로 논문 저자에 이름을 올렸다는 의혹을 두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논문 집필 과정에서 부정을 저질렀는지 여부는 정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까지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논란이 불거진 것 자체가 석·박사 준비생의 의욕을 저하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를 비롯해, 사회 각계에서 영향력을 갖춘 고위 공직자나 교수의 자녀가 부정한 방법으로 논문 공저자에 이름을 올린 사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국내 학술계의 이런 비리가 연구자들의 사기를 저하하는 것은 물론, 연구 윤리를 크게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19일 오전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 후보자의 이른바 '아빠 찬스' 의혹은 지난 13일 처음 나왔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정 후보자가 경북대병원 진료처장(부원장), 원장으로 근무하던 지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딸과 아들이 각각 경북대 의대 편입 전형에 합격했다. 이 과정에서 두 자녀가 부당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구체적으로는 딸은 구술 평가 당시 특정 고사실에서 만점을 받은 점, 아들의 경우 학부생 시절 다른 석·박사과정생들과 함께 논문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려 편입 전형에 가산점을 받았다는 의혹 등이 있다.

윤 당선인 측은 이같은 논란에 대해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정 후보자가 명확한 범죄,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본인이 정확히 해명해서 국민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지, 이런 모든 것을 저희가 지켜보고 무엇보다 국민의 말씀을 경청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정 후보자 또한 정면으로 의혹에 반박했다. 그는 이날 기자 간담회를 열고 "이중삼중의 투명한 견제 장치를 밟아 편입 절차가 진행됐다"라며 "교육부에서 자녀의 편입학 과정을 철저하게 조사해 달라고 요청한다"라고 말했다.

정 후보자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대강당에서 자녀 관련 의혹 등을 해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아들이 교수, 석·박사와 함께 KIC(한국과학학술지 인용)급 논문 2개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서는 "공과대학에서는 학부생이 논문에 참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며 "이런 사례가 유일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녀 편입 특혜' 의혹의 진상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석·박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일부 대학원생들은 '지금 당장 의혹을 해명해야 한다'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씨는 "교수들이 편법으로 자기 자녀 이름을 논문 공저자에 올리거나 하는 일이 절대 드물지 않다"라며 "아무리 결백하다고 강조해도 믿음이 안 가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랩실(연구실)에 이런 행위가 만연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원생 A씨는 "이전에 파견직으로 일할 때 실험에 직접 참여하고도 공저자에 이름을 못 올린 적이 있었다"라며 "나중에 보니 연구 기여도가 아니라, 이미 저자 이름을 올리기로 한 순서가 내정돼 있더라. 이 사실을 알고 한동안 의욕을 잃어 실험이 손에 안 잡혔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말 특출난 재능을 가진 고등학생이나 학부생이 논문을 쓰는 사례가 아예 없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이런 패턴의 부정행위를 너무 많이 보다 보니까 이제는 믿음이 안 간다"라며 "논문이 고위직 자녀 출세용 창구로 이용된다는 게 말이 되나. 구체적으로 자녀가 실험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상세히 밝혀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실제 고위 공직자 자녀가 '부모 찬스'로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는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9년 조국 사태 때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 단국대 의과학연구소 논문에 제1저자로 등록된 뒤, 이를 입시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일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국내 최고 대학인 서울대 교수들이 미성년 자녀를 논문 공저자에 올렸다가 무더기로 적발된 사례도 있다. 지난해 10월 서동용 민주당 의원실이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결정문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검증 대상 논문 64건 중 22건(34%)이 연구부정 판정을 받았다. 이 가운데 4건의 논문이 교수 자신의 자녀 이름을 공저자에 올렸고, 5건이 동료 교수나 지인의 자녀 이름을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기업체에서 연구직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30대 이모씨는 "연구실에서 일하면 이런 부정행위를 직접 목격하거나 전해 듣는 일이 꽤 흔할 것"이라며 "학생들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연구 윤리를 이렇게 가볍게 여기는 교수들이 과연 제대로 규정에 맞춰 연구를 할지 의구심이 든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문가는 교수 등 연구자가 자신의 자녀를 연구에 참여시킬 때는 엄격히 연구 윤리를 지켜야 한다고 제언한다.

한국연구재단 측은 "미성년자, 또는 연구자의 가족을 연구에 참여시키고 이들과 공동 논문을 낼 때는 이들의 참여 계획을 소속기관 및 공동 연구자들에게 철저히 공개하고, 또 이들이 연구에 참여하면서 얻은 정보와 데이터, 노하우 등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보관하도록 해 연구부정 논란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논문 저자 등록 절차 또한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단 측은 "논문 저자가 되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4가지 필수 기준이 있다. 연구 데이터 분석과 해석에 기여한 자, 학술 내용 초안 작업을 하거나 비판적인 수정을 한 자, 출판 버전에 최종 승인을 한 자, 연구에 책임을 지는 것에 동의를 한 자 등이 그 요건"이라며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은 공로가 있더라도 기여자, 임상 조사자 등 명목으로 기록해야지 저자가 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슈취재부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