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호구'된 한국인, 오르면 오를수록 줄선다

잦은 품절에 잇따른 인상, 추가결제 요구까지 '배짱 장사'
한겨울 오픈런에 원정쇼핑까지 … 리셀 수요도 급증

"말 그대로, 하룻밤 자고 나니 110만원을 더 내라는 거예요. 돈도 돈이지만 마냥 '호구(어수룩해서 이용하기 쉬운 사람)'된 거 같아서…."

지난 18일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이 제품 가격을 최대 20% 인상했다. 새해 초부터 큰 폭으로 가격을 올린 데다 이미 물건 값을 모두 지불하고 상품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던 고객들에게도 가격 인상분을 추가 결제하라고 요구하면서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명품 구매고객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레이디백이 하룻밤 새 110만원, 큰 사이즈는 140만원이 올랐는데 디올은 이미 완불한 고객들에게도 차액을 내지 않을거면 예약을 취소하라고 종용했다"며 "가격 오르기 전에 구매하려고 새벽부터 줄 선 노력이 소용 없게 됐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해가 바뀌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명품 브랜드들의 가격 인상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21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에르메스코리아는 4일 가방·스카프·신발 등 주요 제품 가격을 3~7%가량 인상했다. 대표적인 인기 상품인 '콘스탄스 미니 18' 제품이 990만원에서 1040만원(4.8%)으로 인상됐고, 입문백으로 알려진 '피코탄22' 역시 385만원에서 411만원(6.7%)으로 상승했다. 2년 전 가격과 비교하면 10%에 가까운 상승률이다. '샤넬 클래식 미디움'의 경우 2년새 가격이 32% 이상 급등해 1100만원을 웃돌고 있다.

'에·루·샤'로 불리는 이들 고가 명품 브랜드들은 지난해에만 일제히 4~5차례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원부자재 및 인건비 인상, 환율 등의 이유로 특정 브랜드가 가격 인상에 나서면 나머지 명품 브랜드들도 연달아 가격을 올리는 방식이다. 잦은 품절과 가격 인상에 불안해진 소비자들이 서둘러 더 많이 상품을 구매하려고 몰리면서, 한겨울 백화점 앞에 텐트를 치고 입장을 기다리는 '오픈런'은 물론, 인기 상품이 입고되는 매장을 수소문해 먼 지방 백화점까지 순회하는 '원정쇼핑'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급증하는 리셀 수요 또한 거래를 통해 차익을 보려는 소비자와 웃돈을 주고서라도 희소성 있는 명품을 손에 넣겠다는 소비자들의 니즈가 맞아떨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때문에 명품업계에선 '가격을 올릴수록 더 많이 줄선다' '오늘이 가장 싸다' '팔려고 가격 올린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품 브랜드들의 반복되는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들이 지금이 제일 싼 가격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가격을 올리는 데도 수요가 증가하는 '베블렌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현상이 유독 한국에서 두드러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화점 관계자는 "명품업체들은 코로나 이후 관광객이 끊긴 유럽 대도시 매장이나 면세점에서 매출이 줄자 보복소비가 증가하는 중국과 한국 등에서 가격을 올려 매출 손실분을 메꾸고 있다"며 "최근 루이비통이 중국 보따리상 때문에 이미지가 나빠진다며 국내 면세점에서 철수한다고 하지만, 바꿔 말하면 앞으로 한국 고객들에겐 그만큼 더 비싸게 팔겠다는 뜻 아니겠냐"고 씁쓸해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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