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점수 관리하면 뭐하나'…내년에도 고신용자 대출 '역차별' 우려

금융상식 무너진 왜곡 현상 뚜렷해져

코로나 사태 이후 찾아왔던 0%대 금리 시대가 1년 8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5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75%에서 1%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은행 외벽에 붙은 대출 관련 안내문.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김진호 기자] 대기업에 재직 중인 정우철씨(42·가명)는 내년 집안의 여러 행사를 앞두고 대출을 받으려다 충격을 받았다. 주거래은행인 인터넷전문은행에서 신용도가 높다는 이유로 대출이 거절됐기 때문이다. 다른 은행에서도 1등급의 신용도를 문제삼아 요청한 대출 한도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를 책정했다. 정씨는 "연체 등을 신경 써 신용점수를 꼼꼼하게 관리해왔는데 등급이 높은 게 오히려 독이 되니 이해가 안된다”며 “점수가 낮은 중·저신용자보다 갚을 능력이 있는 1등급이 왜 역차별을 받아야 되냐”고 하소연했다.

금융당국이 내년 강도 높은 가계부채 관리를 예고한 가운데 고신용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신용평가사 신용점수가 900점을 초과하는 고신용자들의 대출 총량은 더욱 옥죄면서도 실수요자 구제책을 명분삼아 중·저신용자 대출은 느슨하게 풀어줄 예정으로 역차별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일각에서는 금융 시장의 상식을 역행하는 데다 건전성 차원에서도 규제의 방향성이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은 금융당국에 내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4.5~5.0%로 제시했다. 이는 올해보다 최대 1%포인트 낮은 수치다.

당정은 최근 협의를 통해 중·저신용자 대출의 경우 중단 없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은행들도 내년에는 중·저신용자 대출을 주 먹거리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고신용자들은 내년에도 대출 한파에 직면할 전망이다.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가 낮아진 가운데 중·저신용자 대출을 확대하기 위해선 고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우선적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는 구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은행은 이미 고신용자에 대한 마이너스통장 등 대출을 대폭 줄였거나 중단한 상태다. 내년에는 올해 총량관리에서 배제됐던 전세대출도 포함돼 고신용자들의 대출 문턱은 더욱 높아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시장에서는 금융상식이 무너지는 ‘왜곡 현상’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서는 정부 지원 대출을 받기 위해 신용점수를 일부러 떨어뜨리는 방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최근 총량규제 풍선효과로 은행에서 밀려난 1~2등급 고신용자들이 2금융권 문을 두드리고 나서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능력이 충분한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말고 어려운 이들에게만 대출을 내주라는 것은 금융의 기본논리로 설명이 안 되는 일"이라며 "금융사 입장에서는 부실대출 비율이 크게 올라갈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김진호 기자 rplki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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