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북한이 지난달 28일 극초음속 미사일이라 밝힌 ‘화성8형’의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발표한 것을 계기로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열강들의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경쟁이 보다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기존에 핵탄두가 장착되던 전략무기인 탄도미사일과 국지전에 주로 쓰이는 전술용 순항미사일의 장점을 모두 갖춘 ‘게임체인저(Game Changer)’로 불린다. 현존하는 미사일 방어체제로는 극초음속 미사일의 요격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동북아는 물론 국제 안보 지형을 크게 바꿀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4일(현지시간)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핵잠수함에서 자체 개발한 극초음속 미사일 치르콘의 시험발사를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잠수함에서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를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치르콘은 러시아가 지난해 10월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힌 극초음속 순항미사일로 앞서 2019년 실전배치를 마친 아방가르드와 함께 러시아의 대표적인 극초음속 무기로 불린다.
북한이 화성8형의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하기 직전 미국도 자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전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했다. 미 국방부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극초음속 공기흡입 무기체계(HAWC)’ 미사일 발사 시험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HAWC는 지난 2014년부터 미 국방부가 추진해온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의 시험발사 단계 프로젝트로 알려졌다.
열강들이 앞다퉈 극초음속 미사일 전력 개발에 서두르는 이유는 극초음속 미사일이 전세계 안보지형을 크게 뒤바꿀 수 있는 전략무기가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발사 속도가 최소 음속의 5배인 마하 5(약 시속 6120km) 이상인 미사일을 의미한다. 탄도미사일처럼 일정한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움직이지 않고 방향 전환이 가능한데다 음속 이상의 속도를 내기 힘든 순항미사일과 달리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현존하는 미사일 방어체제로는 요격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HAWC 시험발사에 성공했지만 러시아와 중국 등 이미 극초음속 미사일의 실전배치를 완료한 것으로 알려진 경쟁국들에 비해 개발이 늦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CNN에 따르면 지난 4월, 미 공군은 캘리포니아주 에드워즈 공군기지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인 ‘AGM-183A 애로우(ARRW)’를 시험 발사했지만 실패한 바 있다. 해당 미사일은 최대 속도가 마하 20에 달하는 무기로 개발에 성공하면 지구상 어디든 10분 내로 요격이 가능한 미사일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와함께 육군과 해군이 공동으로 개발중인 ‘공동 극초음속 활공체(C-HGB)와 보잉사가 개발 중인 ’X-51 웨이브라이더‘ 등도 시험발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육군의 이동식 발사차량(TEL)과 해군의 버지니아급 공격용 핵잠수함 수직발사기에 극초음속 미사일을 탑재, 실전능력을 강화시키려고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보다 극초음속 미사일의 실전배치가 늦어진 이유는 이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의 핵군축 기조에 따라 미사일 개발에 제동이 걸렸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은 지난 2019년 8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탈퇴를 선언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재 극초음속 미사일 기술은 러시아가 가장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최대 속도 마하27로 알려진 아방가르드 미사일을 비롯해 킨잘(마하10), 치르콘(마하9) 등 여러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해 실전배치한 상태다.
다만 기술유출 우려가 커지면서 연구기관 및 과학자들에 대한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앞서 지난 8월 러시아 극초음속 시스템연구소(HSRI)의 알렉산드르 쿠라노프 소장이 기밀 유출 혐의로 체포된 것을 전후로 많은 과학자들이 기술유출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라노프 소장은 1970년대 구소련 시절부터 극초음속 비행체 연구에 참여한 최고 방위산업 기술자로 알려져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극초음속 미사일 핵심기술 상당수가 미국이나 중국 등 경쟁국가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테르팍스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쿠라노프 소장이 외국인에게 특정 연구기밀 정보를 넘겨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중국은 지난 2019년 10월 건국 70주년 열병식에서 극초음속 미사일로 알려진 둥펑(DF)-17을 처음으로 공개하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DF-17은 핵탄두형 극초음속 활공체를 탑재해 최대 마하10으로 비행할 수 있고, 궤도도 중간에 바꿀 수 있어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돌파할 수 있는 전력으로 중국 정부는 과시하고 있다.
중국도 이미 2014년부터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위해 초기 시험을 위한 활공체를 개발해 9번 이상 비행시험을 했으며, DF-17 미사일은 2019년 대외 공개 후 곧바로 실전배치까지 마쳤다. 이와함께 마하 5~6 사이 속도로 비행이 가능한 싱쿵-2 미사일의 비행시험도 2018년 성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모두 마하 20 이상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 보유한 상황이라 양국보다 전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더욱 강력한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중앙(CC)TV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중국과학원 기술연구소는 최대 마하 30 속도의 활공체를 실험할 수 있는 풍동(wind tunnel)을 내년까지 완공해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