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바꾼 세밑] 구세군 냄비 2시간 종 울렸는데…뚝 끊어진 온정의 손길

25일 오후 1시께 명동의 한 구세군 자선냄비에서 본지 김수환 기자가 직접 자원봉사자가 돼 시민들의 모금을 기다리고 있다.

[아시아경제 김수환 기자] "우리의 아들, 딸 세대 모두 잘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성탄절인 지난 25일 오후 1시께 명동 구세군 자선냄비에 아흔의 노부부가 두 손을 꼭 잡고 찾아와 한 말이다. 할머니 A(93)씨는 연말이 되면 한 번도 빠짐없이 구세군 모금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1000원짜리 현금 수십 장을 가득 채워 넣은 50대 여성 B씨는 "우리 기부 문화가 100년, 500년 이상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현금을 두둑이 채워 넣는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날 구세군의 상징이기도 한 빨간색 롱패딩 점퍼를 입고 케틀메이트가 됐다. 자선냄비의 상징인 종소리를 울린 2시간 동안 30여명이 기부에 참여했다. 커플, 노부부, 아이들을 데려온 가족까지 다양했다. 이들 모두 하나같이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한다고 말했다.

한산한 거리에 울려 퍼진 종소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는 국내 최대 상권이라는 명동에도 미쳤다. 성탄절만 되면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지만 올해 명동 거리는 한산했고 구세군 종소리와 온정의 손길은 더 크게 느껴졌다.

기자와 같이 자선냄비를 지킨 김태형(29ㆍ남)씨는 "봉사활동을 많이 해왔는데 구세군 활동은 해본 적이 없었다"며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고 그만큼 성탄절에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뜻깊을 것 같아 이렇게 직접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봉사활동이 우리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과 더불어 자원봉사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점이 많다고 했다. 봉사활동이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자신도 얻는 게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김씨는 그러나 "요즘 구세군뿐만 아니라 봉사자 구하기가 어렵다는 소리를 전해 들어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기부를 교육의 기회로 활용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5세 아들에게 현금 1000원 몇 장을 쥐여주고 냄비에 직접 넣도록 한 박모(45ㆍ여)씨는 "직접 기부하는 경험을 통해 주변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었다"며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어린이들이 기부 문화를 깨우쳐 더 밝은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2시 명동 예술극장 앞 우리은행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이 진행되는 모습. 예년과 달리 행인들이 많지 않고 한산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움츠러든 기부, 모금액 작년 25% ↓

체감경기가 나빠지고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기부 활동은 전반적으로 위축됐다. 구세군자선냄비본부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지난 20일까지 누적 거리 모금액은 1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0억원)보다 25% 정도 줄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도 모금액 목표를 지난해 4257억원에서 올해 3500억원으로 낮췄다. 이들 사회단체는 비대면(언택트) 문화가 확산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비대면 모금을 적극 추진 중이다.

구세군도 QR코드와 후불교통카드 등을 통해 현금 없이도 온라인상에서 기부할 수 있도록 비대면 디지털 모금을 도입한 바 있다. 구세군 관계자는 "온라인 모금이 지난해보다 55% 이상 늘었다"며 "시민들의 반응이 좋다. 앞으로도 온라인 모금을 상시적으로 운영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환 기자 ksh205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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