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형기자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 모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총 4단계 협상 중 1단계 협상이 타결됐다는 점에서 앞으로 미ㆍ중이 협상으로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론자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비관론자들은 1단계 협상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와 지식재산권(IP) 보호 등 일부 통상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를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것이다. 국유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비롯한 비시장경제 문제, 기술이전 강요 및 IP 도용 방지, 디지털 무역(전자상거래) 신규 규범, 환율 투명성 보장 등 첨예한 핵심 사안에 대한 미ㆍ중 간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양자적 갈등 구조를 지속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가 21세기 무역 현실에 부합되게 혁신하지 않으면 WTO를 탈퇴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개발도상국으로서 '특별하고 차별적인 대우(S&DT)'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진영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2018년 9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유럽연합(EU)과 일본 통상장관을 초청해 국제통상 질서와 WTO 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이들 국가는 비시장적 경제 정책 및 관행 등 미국이 중국과 각을 세우는 이슈에 대해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조만간에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될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중국의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기 때문에 EU와 일본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식 시장경제 외에 '중국특색사회주의' 시장경제도 균형 있게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막대한 내수시장과 부당한 기술이전 강제로 세계 최대의 무역 국가가 된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더 강화되면 과연 현재의 WTO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선진국의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은 WTO를 탈퇴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나 탈퇴 시 후폭풍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ㆍ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 패권국으로 군림할 수 있도록 한 현재의 국제경제 체제와 무역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에 대한 미국 내 반발도 클 수 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WTO 탈퇴를 포함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단하기 어렵다. 미국의 미래나 국제 관계에 대해 옳은 말을 할 수 있는 측근이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는 없다. 특히 대외 정책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달려 있다. 만약 대중국 강경 정책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악화하면 WTO 탈퇴 의사를 접을 수 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정책에 대한 미국 내 지지 기반은 여전히 굳건한 편이다. 더구나 1단계 협상에서 중국이 500억달러의 미국 농산물 수입에 합의함으로써 농업계의 반발을 약화시키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미국의 WTO 탈퇴 위협은 협상 전략으로 끝날 수 있으나 현실화할 수도 있다. 미국의 WTO 탈퇴 주장을 트럼프 대통령의 허풍이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기 위한 전략으로 치부하기에는 국제통상 체제에 대한 리스크가 너무 크다. 안 될 줄 뻔히 알면서도 미국이 WTO 개혁을 수차례 주문하는 것은 WTO 탈퇴의 명분을 축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통상 당국은 올해 대외통상 환경 개선과 수출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연초 미국과 이란의 무력 대결과 같은 예상치 못한 상황 외에도 올해 통상 환경은 지난해보다 개선될 것으로 보기 어렵다. 대외 변수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는 점을 중시해야 하고, 낙관적인 전망을 현실적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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