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기자
(왼쪽부터)손석호 유럽신한은행 법인장, 김시걸 독일하나은행 법인장, 조재찬 유럽우리은행 법인장
은행업은 철저히 내수산업이었다. 국내 시장을 두고 4대 은행, 5대 은행 하면서 파이를 나눠먹어 왔다. 예금과 대출 이자의 차이 속에서 ‘쉽게 돈을 번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은행업은 수출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주 지역으로 금융 영토를 넓히기 위해 국내 은행들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특히 시중은행들은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 해외 선진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우리 은행들은 금융시스템과 규제 선진화, 해외시장 스터디 등을 통해 실력을 갈고 닦아왔다. ‘선진 금융의 교과서’ 독일에서 기업금융(IB) 개척이라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활약하고 있는 시중은행 관계자들을 만났다. <편집자주>
[프랑크푸르트(독일)=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프랑크푸르트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독일의 여의도’라고 할 수 있다. 기차와 지하철이 모두 서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도착하면 “여기가 유럽이 맞나”하고 놀랄 정도로 높은 빌딩을 쉽게 볼 수 있다. 중앙역 정문을 나와 도심 쪽으로 10분만 걸으면 40층 이상의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는 금융중심지구에 도착한다. 이곳엔 독일 상업은행 로고가 붙은 건물이 유난히 많다. 독일 최대 상업은행(일반은행)인 코메르츠방크 본점 빌딩이 있고, 인근에 또 다른 메이저 은행인 도이체방크, 디지방크, 헬라바 본점 빌딩도 우뚝 서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건물도 프랑크푸르트에 자리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를 영국 런던과 함께 유럽의 금융중심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독일엔 스파카세라고 불리는 저축은행과 주립은행이 은행산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저축은행과 주립은행이 총은행자산 중 약 27%를 차지할 정도로 위상이 높다. 지점 수 9700여개로 우리나라의 저축은행이나 지방은행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지역 주민들이 주로 찾는 신용협동조합 부문도 8955개 지점이 영업 중이다. 총은행자산 중 11.6%를 차지한다. 새마을금고, 단위농협, 신협 등 상호금융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편한데 영향력이 상당하다.
JP모건, UBS, 산탄데르, HSBC 등 글로벌 은행들도 프랑크푸르트에서 주요 은행으로 활약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금융중심지구에 있는 유로화 조형물 뒤로 유럽중앙은행(ECB) 건물이 들어서 있다. 왼쪽 뒤편에는 코메르츠방크 빌딩이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프랑크푸르트엔 상업은행 저축은행 주립은행 외국계 은행이 ‘철옹성’ 같은 카르텔을 치고 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이곳에서 국내 은행들이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은행들은 ‘스피드’와 ‘서비스정신’을 무기로 독일과 유럽의 금융산업 빈틈을 노린다.
유럽에서의 성공 키워드는 단연 기업금융(IB)이다. 개인고객을 상대하는 소매금융은 하지 않으며 한 번 거래를 트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IB에 한국계 은행들이 집중하고 있다. 초대형 은행, 글로벌 기업과의 네트워크 형성이 시급한 과제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런던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유럽 법인 본점을 옮겼다. 유럽우리은행은 2016년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논의가 촉발된 이후 법인 이전을 추진했다. 지난해 11월 독일로 법인을 옮겨 영업을 시작했다. 1년 밖에 안됐지만 벌써 IB 딜(거래)에 참여하고, 슐차인 달레인(SSD)이라고 부르는 독일의 신디케이트론(둘 이상의 은행이 해외 기업에 공동으로 자금을 대출하는 업무)을 따내는 성과를 맛봤다.
조재찬 유럽우리은행 법인장은 “납입자본금 5000만유로의 작은 법인이지만 설립 이후 EU 소재 우량기업 SSD에 참여해 헬라바, 코메르츠방크 등과 함께 거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등과 교류하며 IB 거래선을 늘리고 있다”고 했다. 동유럽 영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조 법인장은 “동유럽으로 진출하는 한국계 기업들을 위해 폴란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금융지원과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금융중심지구에 고층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가운데 빌딩이 독일 상업은행 헬라바 본점이 있는 마인타워다.
독일하나은행은 독일외환은행을 이어 받았다. 옛 외환은행은 1970년 독일 최초의 한국계 금융사로 프랑크푸르트 지점을 설립했다. 1992년 법인으로 전환한 뒤 독일과 동유럽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을 대상으로 대출 영업을 주로 해왔다. 또 유럽 지역 유로화 송금중계(유로 송금 센터), 한국과 독일 기업 대상 수출입 서비스 등 무역금융을 한다.
김시걸 독일하나은행 법인장은 “최근 동유럽 지역에 진출하고 있는 국내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들에 거액의 시설 대출을 내줬다”며 “동유럽 금융시장에 독일하나은행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독일하나은행은 현지화된 금융기법과 부동산금융에 적극적이다. 김 법인장은 “국내에는 다소 생소한 매출채권보험 담보부 팩토링(금융사가 기업으로부터 매출채권을 사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 등 현지에서 활성화된 여신상품 취급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부동산금융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메세트룸빌딩 리파이낸싱, 물류창고 신규 거래, 이탈리아 상업용 건물 거래에 참여해 성과를 냈다.
유럽신한은행은 옛 조흥은행 때인 1994년 프랑크푸르트에 진출했다. 신한은행은 국내에서 키운 핀테크(금융+기술) 역량을 현지에 적용해 가장 앞선 디지털 한국계 은행으로 거듭하고 있다. 손석호 유럽신한은행 법인장은 “지난 9월 한국계 은행 최초로 유럽은행감독청(EBA)이 규정하고 있는 신지급결제서비스(PSD2) 구축에 성공했다”며 “EU 내 오픈뱅킹을 통한 다양한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계 현지 법인을 대상으로 펌뱅킹(Firm Banking), 해외송금 등 현지 은행과 차별화된 자금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손 법인장은 “유럽에서 ICT 분야 선도 은행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유럽신한은행도 2017년부터 SSD에 참여해 유럽 내 우량기업을 발굴, 마케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손 법인장은 “지난 7월 독일 물류창고 인수금융에 참여하는 등 IB 시장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은행업을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규제다. 규제기관이 여럿이다. ECB, 독일 금융감독원(BaFin), 중앙은행(분데스방크) 기관별로 강력한 재량권을 갖고 금융사를 감독한다. 또 내외부 감사인제도를 운영해 금융사에 대한 상시 감시를 한다. 은행이 법인을 세우려면 한국인 법인장과 함께 독일인 대표를 세워야 하는 규정도 있다. 조 법인장은 “유럽은 EU로 묶여 있으면서도 금융규제는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같은 EU여도 은행업을 하려면 독일 따로 프랑스 따로 은행업 인가를 받아야 한다”면서 “한국계 은행들은 이런 깐깐한 규제를 모두 지키며 차근차근 유럽에서 성장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