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문신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이다

공단 지대를 경유해 온 시내버스 천장에서 눈시울빛 전등이 켜지는 저녁이다

손바닥마다 어스름으로 물든 사람들의 고개가 비스듬해지는 저녁이다

다시,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이다

저녁에 듣는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착하게 살기에는 너무 피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나씩의 빈 정류장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내버스 뒤쪽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을 저녁이라고 부른들 죄가 될 리 없는 저녁이다

누가 아파도 단단히 아플 것만 같은 저녁을 보라

저녁에 아픈 사람이 되기로 작정하기 좋은 저녁이다

시내버스 어딘가에서

훅,

울음이 터진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저녁이다

이 버스가 막다른 곳에서 돌아 나오지 못해도 좋을 저녁이다

■ 저녁입니다. 가진 것 없이 새는 귀소하고 가진 것 없이 강아지풀은 한자리를 맴돕니다. 그렇게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가진 것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입니다. 가진 것 없이 다 두고 저무는 저녁, 당신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도 가진 게 없어서 다만 아프지 말라는 말만 전하고 저 또한 집으로 갑니다. 이 저녁이 자꾸 아픕니다. 이 저녁이 자꾸 저릿합니다. 가진 것 없이 아픈 당신을 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 저녁이 온통 간절합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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