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금리인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김경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앙은행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면서 미 캔자스시티 지역 연방준비은행이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개최하는 연례 콘퍼런스는 세계의 관심을 끌어왔다. 그러나 올 38번째 콘퍼런스는 별 존재감이 없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의 주제인 도전(Challenge)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중앙은행은 내리막길로 가는 경제를 구할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장(場)이 될 것이라고 냉소했다. 지난 10년간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은 여전히 회복세가 더디고 일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는 경기침체의 징후도 보인다. 중앙은행의 제로ㆍ마이너스 금리, 양적완화와 같은 비통념적인 통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제의 형편은 마땅치 않은 것이다.

장기 침체론을 제기했던 로런스 서머스 전 미 재무부 장관은 지난 10년간 목표 인플레이션을 달성하지 못한 사실을 근거로 "중앙은행이 언제나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특히 "선진국에서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투자의 비중이 줄어드는 현상을 보건대 영(零)에 가깝거나 마이너스인 실질금리는 더 이상 기업 투자의 제약 조건으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앙은행의 초완화적 통화정책이 비록 단기적으로 총수요를 늘렸을지 모르나 이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했다. 대신 저금리가 초래한 거품, 취약해진 금융중개기능에 따른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과 같은 부작용을 우려했다.

이와 같은 서머스의 주장에 우리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선진국과 형편이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제로금리나 양적완화까지는 아니지만 지난 10년간 초저금리 기조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추세를 막지는 못했다. 저금리가 총수요에 일시적으로 기여는 했겠지만 대신 그 부작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중되고 있다. 가계부채가 그것이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우리나라(97.7%)보다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99.9%), 캐나다(100.7%) 정도다. 미국(76.3%)보다 20% 이상 높고 서브프라임 위기 직전 미국과 유사하다. 국가 패널자료에 근거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연구에 따르면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36~70% 구간대를 넘어서면 성장기여도가 하락하고 100%를 넘어설 때 성장을 잠식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가계부채가 과다할 때 또다시 가계부채가 증가한다면 수요는 일시적으로 늘어나지만 결국에 상환 압력이 가중돼 수요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GDP 대비 소비는 신용카드사태가 일어났던 2002년(55.5%)을 정점으로 하락 추세가 일어나 2015년(49.3%)부터 50% 아래로 내려앉았다. 같은 기간 동안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60% 정도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 대조된다. 가계부채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금리가 수익률을 쫓아 위험을 추구하는 행태, 즉 위험자산선호를 부추기는 것은 또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파생결합증권(DLS)은 금리, 환율, 국제상품가격, 신용위험 등의 기초자산가격에 연동한 파생상품이다. 저금리하에서 늘어난 유동성으로 레버리지 금융상품의 공급도 증가하게 마련이다. 저성장에 대한 우려는 기초자산가격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독일 국채금리에 연동된 DLS 투자 손실이 예다. 국내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우려도 마찬가지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통화당국이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김경수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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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집부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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