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허공의 집/송은숙

절벽에 매달린 집이 있네

집이, 그러니까 집이 지붕과 기둥과 방으로 이루어진 거라면

바다갈매기 둥지 같은 공중의 집도 집일까

생각하다가 아득히 추락하던 몸이 걸려 있네

허공을 밟고 오르는 저녁과

구름을 밟고 내려오는 아침 사이

바람은 요람을 흔드는 손처럼 불고

요람은 세게, 더 세게 흔들려서

소름 돋은 살갗이 여행 가방에 담긴 짐처럼 굴러다니네

지중해를 건너던 배가 가라앉자

난바다를 가로질러 일평생 따라온 관이 솟아올랐네

필리핀의 사가다엔 사람이 죽으면 절벽에 관을 매단다지

거기 의자도 하나 놓는다지

육탈된 혼이 의자에 앉아 편히 쉬라고

흔들리던 말들은 공중에 머물다 천천히 가라앉지

새 등을 타고 날아가기도 하지

수장된 혼을 봉인하여 걸어 놓고

가만히 그 곁에 드러눕는 밤

사가다의 절벽처럼 의자를 들여야겠다고 생각하네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과 나란히 앉아

잔도(棧道)를 물들이며 장엄하게 지는 해를

바다의 끝에서 향나무가 자라는 것을

누군가의 밧줄도 신발도 없이

제 관을 등에 짊어지고 오르는 것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아야겠다고

■시인이 부기해 놓은 바이기도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근래 급증한 난민들을 위해 절벽에 '네스트박스(Nestbox, '새의 둥지'라는 뜻)'라는 소형 주택을 지어 무상으로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에 직접 적혀 있듯이 필리핀 사가다 지역에선 관을 동굴이나 절벽에 매다는 풍습이 전한다고 한다. 기구하고 애절하구나. 살아서나 죽어서나 공중을 떠도는 삶이라니. 그런데 난민도 사자(死者)도 아닌데도 반지하에서 옥탑에서 살고 있는 우리 안의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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