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임밍아웃' 주저하게 하는 사회

보사연, 일·가정 양립실태 보고
첫째 임신 후 직장인 여성 65%가 하던일 그만둬
작은 기업일수록 경력단절 심화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서울 소재의 한 중견기업 4년차 직장인 A(32)씨는 임신 3개월인 현재까지도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지만 '경력이 단절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앞섰기 때문이다. 평소 동료나 상사가 출산ㆍ육아 휴직에 대해 '임신하면 유세부리며 쉰다'는 얘기를 종종했던 터였다. A씨는 이런 눈초리를 받고 싶지 않아 단축근무도 신청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육아휴직도 3개월만 쓰려고 한다"며 "출산 후 주요 업무에서 배제되며 결국 회사를 떠나야 했던 선배 사원들을 여럿 봤다. 임신 사실을 알리는 '임밍아웃'이 주저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임신과 출산은 축복받을 일이다. 하지만 임신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는 과연 축복만이 있을까. 최근 직장 여성들은 임신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일을 '임밍아웃'이라고 부른다. 성정체성을 공개하는 커밍아웃에 빗댄 의도에서 알 수 있듯, 임신 사실을 알리기 어렵고 주저하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발간한 '일ㆍ가정양립 실태와 정책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5~49세 기혼 직장인 여성 중 첫째 자녀를 임신한 취업 여성(5905명)의 65.8%가 둘째 자녀를 임신하기 전에 하던 일을 그만두었거나(50.3%), 다른 일을 한 것(15.5%)으로 조사됐다. 경력단절 발생 시기를 살펴보면, 첫째 자녀 임신 후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의 81.3%가 출산 전 일을 그만둔 것으로 파악됐다. 첫째 자녀 임신 후에도 하던 일을 계속한 직장여성은 34.2%에 불과했다.

지난해 한 기간제 교사는 임신과 출산휴가 기간의 근무평가를 낮게 받은 사유로 학교에서 해고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교사를 다른 교사와 같은 방법으로 평가한 것은 간접 차별이라며 시정하라고 학교에 권고했다.

특히 대기업과 정부ㆍ공공기관 외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경력단절 현상'은 심화된다. 보사연 보고서에 따르면 첫째 아이 출산 후 일 지속 비율은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73.1%), 민간대기업(45.2%), 민간 중소기업(21.8%)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이다연(30) 씨는 "일ㆍ가정 양립과 저출산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제시됐음에도 직장에서 임신은 여전히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처럼 취급받는다"며 "최근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현상에는 사회적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주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임밍아웃 등의 용어가 생겨나는 것은)아직 우리 사회가 일하면서 아이 키우기에 충분한 여건을 마련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현상"이라며 "기업들이 인력을 탄력적으로 사용하고 제도로 정해진 출산ㆍ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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