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죽자 살자 먹자/송기영

먹자는 죽자와 살자 사이에 낀 기집애,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먹자. 옆방에 있는 죽자는 살자와 더 잘 살자 사이에 낀 놈팡이. 허구한 날 마시고 오늘은 죽자. 그 옆방에 살자는 더 잘 살자와 그래도 살자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아줌마. 간혹 먹자에게 간식을 넣어 주고, 죽자에게 술을 받아 줄 때도 있어. 죽지 못해 살자는 먹자와 친하지만 가끔 마시고 죽자가 되어서 온 동네를 맨발로 달리지. 먹자는 죽자와 살자 사이에서 외롭게 버티고 있는 기집애. 흰 눈이 펑펑 오던 날, 마시고 진짜 죽은 죽자를 바라보며, 울적한 마음마저 곱씹어 먹자. 홀아비 집주인이 말했지. 그래, 어쩌겠냐. 발 닦고 고만 잠이나 자자. 살자, 나도.
■재미있는 시다. '먹자'는 "죽자와 살자 사이에서 외롭게 버티고 있는 기집애"인데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먹는다. '죽자'는 "살자와 더 잘 살자 사이에 낀 놈팡이"로 "허구한 날 마시고 오늘은 죽자"라고 외치다가 "흰 눈이 펑펑 오던 날, 마시고 진짜 죽"는다. '살자'는 "더 잘 살자와 그래도 살자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아줌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죽지 못해 살자'와, '나도 살자'라고 한탄하는 '홀아비 집주인'도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시는 왜 읽으면 읽을수록 짠한 것이냐. 이유는 명백하다. '먹자'든 '죽자'든 '살자'든 실은 모두 나와 당신 곧 우리의 다른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 오늘 하루 당신은 '그래도 살자'였는가, '마시고 죽자'였는가, '죽지 못해 살자'였는가, '고만 잠이나 자자'였는가. 부디 안녕하시길 바랄 따름이다.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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