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충북선/정용기

다음 생에는충북선 기찻길 가까운 산골짜기에볕바른 집을 마련해야지.3?8일에 서는 제천 장날이면조치원 오송 충주를 지나오는 기차를 타고터키석 반지를 낀 고운 여자랑제천역 전시장을 가야지.무쇠솥에서 끓여 내는 국밥을 사 먹고 돌아다니다가또 출출해지면 수수부꾸미를 사 먹어야지.태백산맥을 넘어온 가자미를 살까어떤 할미의 깐 도라지를 살까 기웃거리다가꽃봉오리 맺힌 야래향 화분 하나 사고귀가 쫑긋한 강아지도 한 마리 사서 안고돌아오는 기차를 타야지.손잡고 창 너머로 지는 저녁 해를 보다가삼탄역이나 달천역쯤에 내려서 집으로 와야지.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산그늘로 숨어들어야지.소쩍새 소리 아련한 밤이면둘이 나란히 엎드려 시집을 읽을까,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들을까.어쨌거나 다음 생에는충북선 가까운 곳에 살아야지.
■봄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 학기, 그중에 특히 일 학기엔 정말이지 오로지 선심으로(!) 과제물 하나를 보태곤 했었다. 봄이라서 영 마음이 싱숭생숭하거들랑 수업에 들어오는 대신 기차를 타고 봄 맞으러 다녀와도 된다고, 대신 A4 용지 두 장 가득 봄을 담아 오라고. 그런데 아쉽게도 십여 년 넘게 그 과제물을 제출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기도 하고 요즘은 대학생들도 학점에 상당히 민감해서 사오 년 전부터는 봄맞이 과제(?)를 아예 그만두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좀 지나쳤다 싶기도 하다. 봄을 마중하러 가는 그 살뜰하고 다사로운 마음을 종이에다 옮겨 적으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래, 미안하다. 이번 봄엔 내가 솔선해서 휴강하고 기차 타러 갈까, 그럴까?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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