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는 고통스럽게 죽었다. 스스로 장작더미에 올라 몸을 불살랐다. 불길의 뜨거움보다 그로 하여금 죽음을 선택하도록 한 생전의 고통이 더 컸다. 일찍이 그는 아내 데이아네이라를 겁탈하려던 네소스를 활을 쏘아 죽였다. 반인반마(半人半馬)의 네소스는 죽으면서 헤라클레스의 아내에게 '사랑의 묘약'이라며 자신의 피를 준다. 하지만 그 피에는 헤라클레스의 화살촉에 바른 히드라의 독이 퍼져 있었다.훗날 헤라클레스는 오이칼리아에 원정을 가서 전리품으로 아름다운 공주 이올레를 얻는다. 남편의 사랑을 잃을까 두려웠던 데이아네이라는 네소스의 피, 곧 히드라의 독을 바른 옷을 남편에게 입힌다. 독은 삽시간에 헤라클레스의 온몸에 퍼졌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헤라클레스는 결국 자신의 몸을 고통과 더불어 불살라 버리기로 결심한다.인과율(因果律)은 그리스의 신화를 지배하는 강력한 코드 중의 하나다. 영웅이든 비루한 자든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인간이라면 예외가 없다. 헤라클레스도 오이디푸스나 이아손이 그랬듯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의 생애는 온통 살육과 도둑질, 사기로 점철됐기 때문이다. 헤라 여신이 내린 과업을 수행했다고 하지만 그때마다 피범벅을 면치 못했다.물론 헤라클레스의 과업 완수를 문명화의 알레고리이며 상징(象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문갑의 견해에 따르면 헤라클레스의 행위는 '원시적 야만상태로부터 문명세계로의 진입'을 은유한다. 아무튼 헤라클레스는 죽었고, 아비인 제우스가 아들을 들어다 하늘의 별자리에 자리 잡게 했다. 전승에 따라서는 헤라클레스가 불길 속에서 올림포스로 승천해 신이 됐다고도 한다.영웅의 죽음은 단지 죽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헤라클레스뿐인가. 바다의 괴물을 죽이고 안드로메다를 구해 아내로 삼은 페르세우스도, 신화 세계의 일류 사냥꾼으로 아르테미스의 사랑을 받은 오리온도 별자리가 됐다. 신들은 변덕스럽고도 너그러워 아폴론이 선물한 오르페우스의 황금 리라마저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다. 곧 '거문고자리'다.대중의 의식 속에 선명히 아로새겨진 영웅들의 죽음은 그 자체로 소멸이 아니라 변신이어야 마땅하다. 이는 동서양과 고금을 통틀어 변함이 없으되 그 표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수도 마호메트도 세상과 작별하려면 승천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화장(火葬)돼 사리를 남긴 부처의 최후는 놀랄 만큼 직설적이다.승천과 변신은 대중의 지독한 원망(願望)을 담는다.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해 우리 겨레의 역사를 시작한 국조(國祖) 단군은 연수 1908년을 누리고 산신령이 된다. 선량한 민심이 단군을 무덤으로 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와 다름없는 원망이 숙부의 손에 죽은 단종의 넋을 태백산에 산신령으로 보내고 임경업을 무속(巫俗)의 수호신으로 삼았으리라.새 책 '신이 된 인간들'은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저자가 민중의 기대와 원망의 기저를 통찰한 결과다. 저자는 주로 산신(山神)을 이야기한다. 산신에는 자연신과 인신(人神)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주로 죽은 뒤 산신이 된 인물들과 그 배경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가 보기에 역사 속 인물이 산신이 됐다면 그 인물이 민중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존재가 됐다는 뜻이다. 한 인물이 산신이 되는 과정에서 신화와 전설, 역사가 뒤섞인다.하지만 저자는 "현대의 신화 연구가들은 신화와 역사를 더는 대립 구도로 받아들이지 않고, 신화가 담고 있는 의미와 역사적 진실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밝혀내고 있다"면서 "우리 신선 신화도 언젠가는 역사로 편입될 날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신화와 전설의 간극을 메워가는 소조(塑造)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머리말을 읽으면 저자의 관심이 어디에서 출발해 어느 곳을 지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신을 알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원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인간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신을 파악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 왜냐하면, 신의 세계는 지상 인간의 생활에 그 원천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인간이 없다면 신도 존재할 수도 없고, 필요 없는 존재이다. 결국, 인간과 신은 불가분의 관계인 셈이다. 신을 알기 위한 노력은 인간을 더 깊이 알기 위한 작업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huhball@<ⓒ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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