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동전의 운명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휴대하기도 불편하고 쓸모도 예전같지 않고. 화폐의 원조격인 동전이 푸대접을 받고 있다. 남자들에게 특히 더 그렇다. 남성용 지갑에는 동전을 넣을 공간이 아예 없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짤랑짤랑 특유의 소리가 귀에 거슬릴 뿐만 아니라 옷을 입고 벗을 때 툭하고 떨어져나오기 십상이다. 기술 발전으로 동전의 운명은 더욱 가혹해졌다. 신용카드ㆍ스마트폰 결제 급증, 가상화폐 등장으로 존재감마저 위태롭다. 지난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유통된 100원짜리 동전은 19년 만에 처음 줄어들었다. 시중에 유통되는 100원짜리 동전은 지난해 말 95억8500만개로 늘었다가 지난 6월 말 기준 95억1600만개로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4월부터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현금 없는 사회를 종착역으로 2020년까지 우선 동전 없는 사회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동전의 사용을 줄이고 거스름 돈을 가상계좌나 선불카드, 카드 포인트 등으로 돌려줘 편리함을 추구하는 한편 동전제조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경감하자는 차원이다.하지만 메아리가 약하다. 시범사업 4개월째 접어들었지만 주변에 '동전없는 사회'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전국 2만3000여개에 이르는 매장에서 거스름돈을 동전이 아닌 선불카드에 충전할 수 있게 됐지만 시범사업을 운영중인 편의점만 가더라도 이 같은 요구에 생소한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가 태반이다. 현금없는 사회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노르웨이ㆍ덴마크ㆍ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국가들은 탈세 등 범죄 예방과 테러방지 목적으로 현금없는 사회를 실현하고 있다. 단적으로 스웨덴 은행 지점은 아예 현금과 현금자동지급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특히 스웨덴은 고액권 지폐인 1000크로나(미화 115달러 상당) 권종을 2013년 말 완전히 폐지시키면서 전반적인 화폐 사용이 급감했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케네스 로고프는 종이 화폐 폐지가 필요한 또다른 이유로 "중앙은행이 제한 없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금없는 사회가 장밋빛 미래만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현금을 선호하는 고령자와 빈곤층, 저신용자들은 금융소외자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불결제수단을 둘러싼 보안과 해킹 등 첨단기술의 한계도 해결해야 한다. 화폐의 종말은 먼 미래가 아닐 수 있다. 현금 없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느리고 신중한 접근을 택했던 스칸디나비아국가의 선례를 참고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한 이유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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